작년에 독일 출장 중 자리를 잠시 비웠는데 여권, 지갑, 미팅 자료 등이 든 가방이 없는 겁니다!
누군가 훔쳐간 거지요. 처음엔 멘붕이 아니라 그냥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현실 파악이 안되더군요.
이거 뜯을 때만 해도 좋았지.....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하러 갔는데 어느 나라 경찰이나 포스가 쩌는 건 똑같습니다. 손가락이 두꺼워서 키보드를 독수리 타법으로 치더라는.....신고하러 왔는데 잘 못해서 잡혀 온 것 마냥 쭈그리가 되어 신고를 합니다.
엄청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항공편, 호텔 체크 아웃을 미룬 뒤 대사관에 임시 여권을 받으로 갔습니다. 악명이 자자하지만 생각 외로 대사관 직원들 상당히 친철하더군요.
그 와중에 반가운 얼굴이 있어서 인사도 하고
태극마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ㅠㅠ
그렇게 항공편이 하루 미뤄지자 이왕 이리 된 거 뭐라도 하자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 때 당시 분데스리가 2부에서 뛰고 있던 이청용 선수 경기를 보기로 합니다.
경기장에 늦게 도착해 일단 눈 앞에 보이는 출입구에서 티켓을 끊는데 "너 진짜 여기로 들어갈거냐?" 묻더군요. 일단 급한 마음에 별 생각 없이 그냥 티켓 달라고 했죠. 이 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맙소사! 제가 들어간 곳은 이청용 선수가 뛰고 있는 보훔 서포터 자리고 아니고 오스나브뤼크(부르크 아닙니다. 브르크 아닙니다. 브리휘크으 입니다)라는 상대팀 서포터 자리였습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끼게 되는 건 아니겠지....
순간 티비에서 보던 홀리건들의 모습이 머릿 속을 스치면서 내일 한국 뉴스에 '한국인, 분데스리가 경기 관람 중 집단 폭행 당해' 뉴스가 나오는 상상을 합니다. 그래서 재빨리 직원에게 '티켓을 잘 못 끊었는데 반대편으로 갈 수 없냐' 라고 물었더니 이런 경우가 처음인지 당황 하더군요.
'경기 안 보고 그냥 갈까' 라고 고민 하는 찰라 한 독일인이 저에게 말을 겁니다. 유명한 팀도 아니고 동양인 선수 한 명 없는 팀 서포터 자리에 외지인이 있으니 신기했겠지요.
너 여기 왜 있어?
아 그냥........(사실대로 말하기 망설여 졌습니다.)
그냥 왔다고? 너 우리팀 알아?
계속 추궁하니 궁지에 몰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골격 엄청난 게르만 형....... 아니 형님, 나 사실은 이청용이라는 한국 선수가 보훔에 뛰고 있어서 저 쪽 갈랬는데 티켓을 잘 못 끊었어.... 그런데 저 쪽으로 못 간데.... 때리진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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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 없어. 넌 이제 부터 오스나브뤼크 서포터야. 자 이거 선물이야." 하면서 이 모자를 제게 주는 겁니다.
본격 보라빛 German 갬성
"대신 너는 이곳에 오게 된 이상 우리 팀을 응원 해야 돼"
생각보다 호의적인 모습에 일단 긴장을 풀고 경기장에 들어 갑니다.
"아 사람들이 그렇게 과격 하진 않네. 이청용 응원해도 되겠다" 라는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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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만에 사라집니다.
방화 한 거 아닙니다. 홍염입니다.
분데스리가 응원 열기 익히 알려졌지만 2부라 덜 할 줄 알았는데 응원 열기 장난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독일인들에 대한 선입견(차분, 무두뚝, 원칙주의) 이런 거 없습니다.
다들 맥주 컵 하나씩 들고 있다 선수가 실수하면 컵 날라 다니고(플라스틱 입니다), 철망에 올라가고, 담배 연기 자욱하고 마산 아재들이 벤치마킹 할 모습이 상당히 많이 연출 됩니다.
그래서 이청용의 ㅇ, 보훔의 ㅂ 도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누군지 알고 여기가 어딘지도 알겠는데 이청용은 모르오!
맥주까지 한잔 얻어 먹고는 제 고향 이름도 이렇게 외쳐 본 적 없는데 어디에도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오스나브뤼크를 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그래도 내 눈은 블루드래곤 당신만을 쫓고 있었다오.
이청용이 볼을 잡아도 좋아하지 못하고, 보훔이 골을 먹어도 슬퍼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됩니다.
대신 오스나브뤼크 골을 넣었을 땐 시위대 속에 프락치의 마음으로 열렬히 환호합니다.
그렇게 경기는 다행히(?)도 1:1로 끝나고 호텔로 돌아 가려는데 독일 형이 날 부릅니다.
"너 그 모자 쓰고 갈 생각이야? 여기 보훔인데........ 그리고 경찰이 의심할 수도 있어." 강제 오스나브뤼크 외침에 정신이 세뇌되어 이 곳이 보훔 이라는 걸 망각한 겁니다. 황급히 모자를 벗고 헤어지는데 독일 형이 그러더군요. 이 모자 한국에 가지고 가서 사진 찍어 보내줘.
말은 홀스, 경찰은 6명이니까 짝스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한국엔 나같이 생긴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미모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사진을 찍어 보내 줍니다.
이 경기가 한국에서도 재방송 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 땐 여권 분실 때문에 축구 보면서도 즐겁 다기 보다는 너무 서러웠는데 지나고 보니 기억에 오래 남을 유쾌한 에피소드 같습니다.
여행도 인생도 꼬일 땐 한 없이 짜증나지만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오는 것 같아요.
아무튼 그 후로 제 가슴속에 분데스리가 제 1의 팀이 된 오스나브뤼크 를 열렬히 응원했건만..... 지못미ㅠㅠ
그래도 이번 시즌엔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6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1부 승격이 된다면 아주 기쁠 것 같습니다.
Viva osnabrü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