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 알파고흘 떠올리게 하네요 펌
샹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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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3 00:01
반집의 제왕, 바둑에서 종반 끝내기에 신지평을 연 기사. 이창호의 바둑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하자면 두터움, 침착함, 형세판단, 끝내기다. 강태공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느려 보이나 두터운 행마를 주무기로 삼았다. 스승인 조훈현이 쾌속행마로 제비라는 별명을 얻은 것을 생각하면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게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다. 다른 기사들이 아무리 유리해도 두텁고 침착하게 두어 정확한 끝내기로 마무리해 역전시키니 그 중압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나이웨이가 "이창호 九단과 바둑을 두면 참 이상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는데도 바둑은 언제나 불리한 것 같다"는 말을 남길 정도. 결국 상대는 '초중반에 유리한 국면으로 만들지 않으면 후반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무리수를 두고, 그러다가 후반에 이창호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창호가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어서 분명 형세는 자신이 앞서는데도 무표정한 이창호를 보며 자멸하는 경우가 많다.[28] 조훈현이 이창호의 전성기에 계속 당했던 패턴이 바로 이것으로, 초중반 조훈현 쾌속행마로 우세 -> 조훈현의 무리수 -> 이창호의 끝내기로 역전 식으로 계속 당했다. 아직도 끝내기와 형세판단에 있어서는 이창호가 최정상급임을 인정받고 있으며, 하물며 전성기 때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기원 기사실에서 모여 관전할 때 끝내기 즈음이 되면, "창호 어디갔어? 창호한테 물어봐!"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고 한다. 양재호에 따르면 이창호는 극초반부터 계가를 한다고 한다. 프로라면 모두 가능한 일이지만, 계가를 지루해하지 않고 종국까지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은 이창호를 비롯해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고수 치고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에게도 반집 승부가 많이 나는 기사 중 하나이다. 때문에 하수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부질없는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몇 번만 더 둬보면 그 반집 차이가 타 기사의 백집 차이보다 크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반집 승부를 하는 이유는 반집으로 이기나 불계로 이기나 이기는 것은 똑같기 때문. 또한 절대 살릴 수 없는 대마를 잡지 않는 습관도 있는데, 그 이유는 대마를 잡으려다 보면 운과 실수로 판이 뒤집힐 수도 있지만 대마를 죽이지 않고 계가로 가면 반드시 이길 수 있어서라고 한다. 이는 스승 조훈현 九단도 언급한 적이 있는 부분인데, 이창호가 프로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초반에 유리했던 경우에도 대마를 노리거나 큰 집 차이로 이기는 걸 노리지 않고 작은 집 차이로 이기는 승부를 많이 하자 혹시 어떤 연유로든 큰 집 차이 승부를 못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창호와 그러한 대국들에 대해 복기를 하면서 넌지시 물어보았는데 이창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큰 집 승부를 하려면 대마를 잡아야 하는데 대마를 잡기 위해 준동하다간 상대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마를 살려주는 대신 다른 곳에서 차근차근 대가를 치르게 하면 작은 집 차이로 확실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말은 반상에서 수십 년 정진한 노년 기사들이 새파란 신생 기재들에게 일러주는 충고에 알맞지, 중학생 정도의 어린아이가 스스로 깨우치고 실행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어린 기사라면 당연히 싸움을 좋아하고 상대를 통쾌하게 누르는 대승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창호는 당시 승부의 본질을 꿰뚫는 확고한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조九단이 신문 인터뷰에서도 한 적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가 바둑TV에서 해설을 하던 때에도 대국 중 잠시 쉬는 시간에 상대 진행자와 이창호에 대한 대화를 잠시 나누다가 직접 담담히 말한 적이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 사람은 반 집에 땅을 치지만, 그런 상대를 보고 창호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물러서서 그런건데, 억울해하실 것이 없는데?』 하면서 말이다. ㅡ조훈현 (월간조선 02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