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행 항공비 부담 커, 185cm로 짜르자고 했다"
오 회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의 항공편을 나누게 된 배경과 기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오 회장은 "체코까지 비즈니스석 항공 요금이 6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며 "선수 전원에게 비즈니스석을 제공하면 예산과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고 배경을 말했다.
이어 "비즈니스석을 제공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어느 선에서 짤라야 하는지를 생각한 끝에 185cm를 기준으로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오 회장은 "내 키가 183cm인데, 나도 비행기 타고 다녀보니 힘들더라"며 "그래서 내가 이번 수원 월드그랑프리 대회에 앞서 가진 회식 자리에서 홍성진 감독과 (비즈니스석-이노코미석 분배 문제를) 고민한 끝에 이번 월드그랑프리는 일단 185cm로 자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잘라야 되기 때문에 185cm 이상 선수는 비즈니스석으로, 185cm 이하는 이코노미석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랬더니 홍 감독이 '리베로 김해란이 무릎 수술을 한 적이 있어 불편하니까 그 선수 한 명만 더 비즈니스석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며 "그래서 그 선수까지 포함해서 6명에게 비즈니스석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즈니스석 한 번 태웠다가는 앞으로도 고민"
오한남 회장은 또 "여자배구 비즈니스석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현재 이쪽 저쪽에서 전화가 많이 온다"며 "한 번 비즈니스석을 태웠다가는 앞으로도 다 그렇게 해줘야 하는데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185cm를 기준으로 제안한 배경에 대해서도 "같은 선수인데 누구는 잘한다고 비즈니스석 주고 그러면 소외감 느낀다"며 "그래서 키로 자르자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키로 잘라도 큰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같은 대표 선수인데 항공편 등급을 나눠서 가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선수이기 전에 사람인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그러자 오 회장은 "그렇죠. 그래서 고민이 많은데, 그래도 이게 또 시합이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저 쪽에서는 저기할 수 있지만, 우리는 괜히 받아 가지고 더 고민 아니냐'고 말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KOVO에서는 다 잘되자고 지원해준 것이고 그걸로 우리가 잘 운영을 해야 되는데, 내가 지금 회장에 인준된 지 20일밖에 안 돼서 정신이 없다. 예산 문제도 있고 머리가 보통 아픈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IBK기업은행장, 기사 보고 '추가 지원' 긴급 지시
여자배구 대표팀의 '절반 비즈니스석' 보도가 나온 후 배구계는 물론 온라인 곳곳에서 배구협회를 향한 비난이 폭주했다.
성난 네티즌들이 배구협회 홈페이지에 항의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몰려들면서 배구협회 사이트가 한동안 다운되기도 했다. 지난 24일 오후 배구협회 홈페이지는 '허용 접속량을 초과하였습니다'는 문구만 뜬 채 접속이 되지 않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여자 프로배구 구단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해결에 나섰다.
IBK기업은행의 구단주인 김도진 은행장은 지난 24일 밤 <오마이뉴스> 보도를 접한 후 직접 구단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공편 추가 비용을 지원하라'고 긴급 지시를 내렸다.
정민욱 IBK기업은행 사무국장은 25일 오전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지원 배경과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은행장님께서 어제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6명밖에 비즈니스석을 못 탄다는 기사를 보고서 밤 8시쯤 구단 관계자에게 항공편 추가 지원 지시를 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가 배구협회와 조율을 해서 어젯밤에 긴급하게 비즈니스석 항공표를 모두 확보했다"며 "오는 26일 체코로 출국하는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 전원이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단주인 은행장님이 어제 기사를 보고 나서 이 문제는 우리가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 우리가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팀이기도 한데,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이렇게 대우를 제대로 못 받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그러나 배구협회도 사정이 있을 테니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셨고 결과적으로 잘 해결이 됐다"고 말했다.
'표 구하기 어렵다'던 배구협회, IBK 지원 밝히자 '광속 확보'
IBK기업은행은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7 월드그랑프리 2그룹 결선 라운드에 참가하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을 후원하기 위해 3000만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 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IBK기업은행의 지원 내용을 보고 받고, 그쪽에서 돈을 준다고 우리가 비즈니스석을 추가 지원하면 이게 또 형평성에 안 맞는다"며 "프로배구연맹(KOVO)에게 얘기를 해서 추진하라고 지시를 했고, 현재는 잘 정리가 됐다"고 말했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지난 24일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여름휴가 성수기여서 비즈니스 좌석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며 "시일이 촉박해 추가 좌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IBK기업은행이 지원 의사를 밝히자 짧은 밤 시간에 비즈니스석 항공표를 모두 구해버렸다. 어설픈 해명이 화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오한남 신임 회장과 배구협회는 2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고급 호텔에서 제39대 임원 구성을 위한 대의원총회와 오 회장 취임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회장·감독의 '185cm 자르기' 발상, 사태 본질 '무지'
그러나 오 회장으로부터 '185cm를 기준으로 자르라고 제안했다'는 설명을 듣고, 과연 이번 사태의 본질과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홍성진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의 대응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선수단의 화합과 분위기를 잘 관리하고 이끌어야 할 책임자이다.
아무리 배구협회 회장이라고 해도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을 185cm를 기준으로 자르자'고 제안했을 때, '그렇게 하면 선수단 화합과 경기력에 문제가 생긴다'며 정중히 거절하고 다른 방법을 택하도록 했어야 한다.
그러나 홍 감독은 '한 명만 더 비즈니스석을 제공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오히려 사태를 키우는 데 일조한 셈이 됐다.
이번 '여자배구 대표팀 절반 비즈니스석' 사건은 그동안 배구협회의 대표팀 지원 부족 문제만 나오면 단골손님으로 거론됐던 '김치찌개 회식' 사건보다 네티즌과 여론으로부터 훨씬 큰 비난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배구협회가 남자배구 대표팀에게는 전원 비즈니스석 항공편을 제공하는 반면, 여자배구 대표팀에게는 절반만 비즈니스석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남녀 배구 차별 문제까지 뒤섞여 비난 강도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배구협회를 당장 해체하라", "신임 회장 취임식을 고급 호텔에서 할 돈은 있고 배구 인기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여자배구 대표팀을 비즈니스석 태워줄 돈은 없다는 거냐", "이러려고 전임 회장을 해임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냐" 등 곳곳에서 가시 돋친 비난 글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분명한 건, 이번 사태도 실수가 아닌 '인재'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