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이 말한 “대표팀 엔트리를 다 채우지 못한채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아쉽다. 이재영은 왔어야 했다”는 말은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한 국가대표 선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대표팀의 주장이자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스타라는 측면에서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감독의 고유권한인 선수단 구성과 선수선발 및 운영에 대한 불만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선수가 감독의 권한에 이의를 제기할 만큼 홍 감독의 선수단 장악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꼴이 됐다. 홍 감독은 “다양한 선수를 활용하겠다”고 되뇌면서도 김연경을 빼놓지 않고 출전시키고 있다. 홍 감독이 김연경에 의존할수록 팀의 중심은 감독이 아닌 선수에게 옮겨가게 된다.
이 와중에 배구협회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비즈니스석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등 떠밀리듯 다급하게 일을 처리하면서 원성만 샀다. 집행부 공백기와 새 회장 선임 초기의 어수선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확실한 원칙을 지키지 않고 휘청거린 탓이 더 컸다. 배구협회보다 훨씬 많은 연간 예산을 집행하는 대한축구협회도 국가대표팀 선수들에게 이코노미석을 제공한다. 좌석 업그레이드는 선수 개인의 선택에 따라 각자 자비로 부담한다. 배구협회는 비즈니스석을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특별한 혜택’이 되도록 활용해야 했다. 정확한 원칙이 없었던 탓에 남자대표팀에게는 비즈니스석을 마련해줬고, 비난 여론이 들끓자 여자대표팀 일부에게만 비즈니스석을 제공하면서 돈을 쓰고도 욕을 먹었다.
김연경의 대회출전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심을 잡지 못했다. 당초 다음달 열리는 그랜드 챔피언스컵 엔트리에는 김연경이 없었는데 주최측이 김연경의 출전을 희망하면서 배구협회가 선수와 주최측의 눈치를 살폈다. 세계선수권 아시아예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 배구협회가 나서 그랜드 챔피언스컵 출전을 딱 잘라 막았으면 됐다. 꼭 출전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선수에게 확실하게 설명하고 설득했어야지 선수 눈치를 보며 사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휘뚜루마뚜루 김연경을 활용하며 그에 대한 의존증을 키워온 배구협회는 선수가 기분상하지 않게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로 스스로의 위상을 떨어트렸다.
온라인을 통해 보여지는 팬들의 여론도 어느새 김연경만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다. 파급력있는 슈퍼스타의 목소리가 주목을 끄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모든 경우에 맞아떨어지는 무조건적인 진리일 수는 없다. 팬들이 믿음을 보내고 지지를 하는 와중에도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이성적으로 다뤄야 한다. 김연경이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가 한국 배구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김연경의 의사에 반하는 일은 전부 잘못된 것이라는 극도의 이분법적 해석으로는 건강한 비평이 이뤄질 수 없다. 김연경을 제외한 국내 프로구단과 동료선수, 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KOVO) 등 한국 배구계의 여집합 전체를 비난만 해서는 배구계의 변화와 발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