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이)미래는 나이답지 않게 인생관이 뚜렷해요.”최근 벨기에 즈어젤에서 막을 내린 2017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서 2년 연속으로 준우승을 차지한 이미래(22·한국체대)의 부친 이학표(62) 씨는 막내딸이 걸어온 인생 이야기를 기자에게 들려주던 중 한 차례 목이 메인 적이 있다. 이미래가 4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당시 뜻하지 않게 폐쇄성 뇌수두증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을 때를 회상하면서다. 이 씨는 “미래는 어릴 때부터 엄살을 부리지 않았다. 그런데 (뇌수두증이 발견되기 전) 잠도 잘 못자고, 자꾸 머리가 아프다면서 당구 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 한 번은 집에 와서 무릎 다친 것을 확인했는데 어디서 다쳤는지도 모르고 해서 딸이 정신을 못차리고 사는 것 같아서 꾸지람을 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뇌수두증이었다. 그때 엄청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이미래는 국내 1호 여자 당구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경력답게 학창시절 당구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도 학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정부 차원에서 ‘공부하는 운동선수’ 육성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학습권 보장 등이 꽤 잘 이뤄지고 있으나 이미래가 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운동부 학생이 정규수업에 모두 참여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당구를 좋아한 아버지 권유로 큐를 잡은 이미래는 일찌감치 제2의 인생 역시 소중하게 그리면서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명문 사학에 입학이 가능할 정도로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간 딸이 이상한 행동과 반응을 보여 부모가 회초리를 들었는데, 예기치 않게 뇌수두증이 발견된 것이다. “뇌가 압박을 받는 상황이어서 미래가 누워있으면 눈에 장애가 생기고, 서 있으면 관절 통증을 느끼더라. 자다가 귀가 눌리면 구토도 했다. 중학교 때부터 선수 생활하며 성장을 거듭한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와 어려움에 빠졌고 이를 부모 입장에서 몰라준 셈이어서 가슴이 아팠다.”
‘애어른’답게 이미래는 이 고비를 당돌하게 이겨냈다.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해 감각은 떨어졌을 수 있으나 중, 고등학교 내내 정규수업을 마친 뒤 자정까지 훈련한 땀은 쉽게 자신을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이미래는 “위기라는 느낌보다 ‘난 아직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다시 진심으로 연습하면 올라설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수술 이후 아버지께서 전보다 딸이 걱정됐는지 정신적으로 여유를 주더라.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극복한 것 같다”고 웃었다. 다시 뛴 이미래의 터닝포인트는 지난해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이다. 세계 1위 클롬펜아워 테레스(네덜란드)에게 우승을 내줬으나 한국 여자 선수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했다. 명랑하고 밝은 성격, 긍정의 힘을 믿은 이미래가 누구도 어려운 뇌수술 후유증을 스스로 극복한 셈이다. 올해 또 한 번 세계선수권 입상에 성공하면서 한국 여자 3쿠션 대들보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그가 이르게 재기에 성공하게 된 건 뛰어난 정신력만큼이나 치밀한 평소 훈련에서 비롯됐다. 학업에도 충실했던 습관답게 중학교 시절 당구를 익힐 때도 당구 본고장 유럽의 이론 원서를 탐독하며 아버지와 당구 테이블에서 꾸준히 연구했다고 한다. 이미래는 “당구는 기준이 있어야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다. 당시 이론 공부를 실전에 도입하면서 나만의 기준이 생겼고 주요 고비를 이겨낼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롤모델은 남자 3쿠션 4대 천왕 중 한 명인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이다. 이미래는 쿠드롱이 “감각적으로 공을 잘 다루면서도 이론을 겸비한 자기만의 시스템이 확실한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아버지 이 씨는 “딸이 이제 경험이 쌓인만큼 큰 무대에서 더 집중력을 두고 자기 경기를 하면 언젠가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