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프로레슬링 단체 WWE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로도 불린다. UFC 등 다른 격투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잘 훈련된 운동 선수들이 벨트와 랭킹을 걸고 경쟁하는 시스템이지만 어느 정도 짜인 각본 아래 진행되기 때문이다. 뛰어난 선수들이 스토리, 연기력, 음악 등과 한데 어우러져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종합 격투 축제'라 할 수 있다.한국에서는 ‘실전 논란’ 속에서 프로 레슬링의 인기가 식은 지 오래지만 미국 WWE는 지금도 여전한 인기를 자랑한다. 팬들은 WWE가 UFC 등 종합격투기 단체와 다르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실전은 아니지만 쇼 성격이 짙고, 선수와 팬이 함께 환호하며 온전히 해당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크다. 좋아하는 선수와 싫어하는 선수가 뚜렷한 가운데 자신의 영웅을 응원, 한 편의 통쾌한 액션영화를 즐기는 기분을 느낀다. WWE는 오랜 세월 동안 팬들에게 즐거움을 준 단체답게 시대를 대표하는 간판스타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경기를 끝내기 위해 구사했던 필살기는 ‘쇼타임’의 클라이막스 같은 역할을 했다. ‘MMA는 기술을 피할 수 있으나 프로레슬링은 기술을 당해야 한다’는 말은 프로레슬러의 어려움과 필살기의 가치를 잘 말해주고 있다. 오스틴 ‘스톤 콜드 스터너’와 더 락 '릭 바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드웨인 '더 락' 존슨은 WWE를 다시금 전성기로 끌어올린 스타들이다. 호건과 워리어가 그랬듯 짙은 남성성이 돋보이는 캐릭터들로 그만큼 필살기 역시 파워가 넘쳐흘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남자’ 냄새가 물씬 풍겼던 오스틴의 대표적 필살기는 ‘스톤 콜드 스터너(Stone Cold Stunner)’다. 상대 얼굴을 페이스락 자세로 잡은 상태에서 그대로 주저앉으며 턱에 충격을 가하는 기술이다. 워낙 빠르고 정확하게 체중까지 실어 들어가 맷집에 상관없이 버티지 못했다. 기술의 정식명칭은 ‘스터너’지만 오스틴이 쓰게 되면 ‘스톤 콜드 스터너’로 불렸다. 그만큼 같은 기술이라도 오스틴이 쓰면 포스부터 남달랐기 때문이다. 선역과 악역의 경계가 모호했던 인물답게 오스틴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거나 뜻이 다르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필살기를 작렬했다. 더 락, 존 시나, 언더테이커, 브록 레스너, 골드 버그같은 경쟁자들은 물론 여성인 스테파니 맥마흔에게까지 필살기를 폭발시키며 남녀평등주의(?)를 몸소 실천하기도. 지금은 영화배우로 유명한 더 락은 타고난 엔터테이너답게 필살기 역시 쇼맨십이 넘쳐흘렀다. 더 락의 필살기는 ‘락 바텀(Rock Bottom)’이었다. 상대의 목을 한 팔로 감은 채 공중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링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충돌시켜 버리는 기술이다. 오스틴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기술은 본래 ‘리프팅 사이드 슬램’이라는 정식 명칭이 따로 있다. 하지만 더 락이 사용할 경우 ‘릭 바텀’이라고 따로 불렸다.
UFC 도전한 레스너와 CM펑크의 필살기
브록 레스너와 ‘CM펑크‘ 필 브룩스라는 이름은 WWE를 잘 모르는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UFC에 도전했던 흔치않은 프로레슬러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실전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프로레슬러들임에도 MMA무대에 나섰던 것은 그만큼 신체적·정신적으로 강한 인물들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두꺼운 목에 엄청난 가슴 근육 등 외견상 보기에도 근육 괴물의 포스를 물씬 풍기는 레스너는 외모만큼이나 묵직한 필살기를 구사했다. 스스로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F-5(F-Five)’가 그것으로 파워에 기술까지 접목된 그야말로 레스너에 딱 어울리는 피니쉬 테크닉이었다.
워리어 ‘고릴라 프레스 드롭’은 상대를 번쩍 들어 올려 떨어뜨리는 단순한 면이 있다. 반면 레스너는 상대방을 번쩍 들어 자신의 어깨에 걸친 후 스핀을 주며 집어던지듯 내동댕이친다.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도 같이 넘어지며 상대가 낙법을 치지 못하게 한다.
기술의 특성상 상대는 얼굴이 바닥 쪽으로 나가떨어지는 상황이 대부분이라 얼굴이나 몸통 쪽에 큰 충격을 입는다. 이러한 신체능력을 입증하듯 레스너는 잠깐이지만 UFC 헤비급 챔피언까지 차지하며 프로레슬링, MMA에서 모두 성공하는 업적을 이뤄냈다.
최근 UFC에 도전했던 CM 펑크는 MMA의 높아진 벽에 고전하고 있지만 프로레슬링 무대에서만큼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통했다.
상대를 어깨에 들쳐 멘 후 떨어뜨리면서 머리 쪽을 무릎으로 가격하는 ‘고 투 슬립(GTS)’은 그야말로 최고의 타이밍에서 나오는 기술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니킥을 맞는지라 충격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외 팔과 목을 동시에 압박하는 서브미션 기술 ‘아나콘다 바이스(Anaconda Vice)’ 또한 CM 펑크의 빼어난 기술 수준을 뽐내기에 딱 맞는 기술이었다는 평가다.
언더테이커 ‘툼스톤 파일드라이버’와 존 시나 ‘AA’
WWE 대표적 장수 캐릭터 ‘흑집사’ 언더테이커를 대표하는 필살기는 단연 ‘툼스톤 파일드라이버(Tombstone Piledriver)’다. 기술의 정확성과 깔끔함은 물론 특유의 연기력까지 더해지며 언더테이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술로 자리 잡았다.
사실 상대를 거꾸로 뒤집은 후 그대로 주저앉으며 머리를 바닥에 찍어버리는 ‘파일드라이버’는 시전하기 가장 어렵고 조심스러운 기술 중 하나다. 이 기술을 WWE에서 최초로 사용한 선수로 알려진 앙드레 더 자이언트가 시전 중 실수로 상대 선수에게 치명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속죄의 의미로 더 이상 해당 기술을 쓰지 않았고 한동안 선수들 사이에서 사용이 꺼려지는 시기가 있었다.
이후 케인, 스팅, 크리스 벤와 등이 쓰면서 봉인 해제되어가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제대로 이 벽을 깨트려버린 선수는 언더테이커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큰 키에 힘도 좋았던 언더테이커는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리액션은 크게 파일드라이버를 잘 구사했고 어느덧 자이언트의 흑역사도 점점 묻혀갔다.
‘WWE의 얼굴’ 존 시나는 헐크 호건 이후 명맥이 끊겼던 ‘슈퍼 히어로’의 재림으로 불린 대형 슈퍼스타다. 링 안팎에서 쾌남아 이미지를 보이며 여성과 아이들을 WWE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 그의 필살기는 ‘애티튜드 어드저스트먼트(Attitude Adjustment)’다.
상대방을 어깨로 들쳐 멘 후, 그대로 측면으로 같이 넘어지면서 바닥에 던져버리는 기술로 무엇보다 상당한 파워가 요구된다. 시나는 랜디 오턴, 에디 게레로, 리키쉬 등 상대의 체격에 관계없이 기회다 싶으면 기술을 선보이며 힘센 사나이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