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귀한 줄 모르는 회사가 몰락하는 과정

사회

직원 귀한 줄 모르는 회사가 몰락하는 과정

돌아on오유in 0 761 2023.03.2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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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월이면 성과급 이야기로 시끄러운 회사들이 생긴다. 진통이 오래가면 3월이 되어서도 쉽사리 진화되지 않는다.


특히 좋은 실적을 거둔 회사가 보상을 적절히 해주지 않으면, 직원들의 불만이 쌓여 문제가 생긴다. '그 동안 돈이 없어서 안 준게 아니었구나'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이런 회사에서는 서서히 이탈자가 생긴다. 가장 먼저 사직서를 내미는 선구자들은 일을 잘하기로 소문난 이들이다. 다른 회사에서도 원하는 실력을 갖췄으니 이직이 쉽다. 그러니 몸 값을 높여 원하는 바를 이룬다.

 

초기에는 일부 직원들의 이야기에 그친다. 대기업은 표면적으로 문제가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조직의 시스템이 아직 한참을 더 버틸 수 있어서다. 이때는 조직 내 입지가 아주 좋은 S급보다는, 일은 잘하지만 미래를 확신할 정도는 아닌 A급에서 이탈이 더 많다. 일부 인재를 떠나보낸 회사는 남아있는 인원들로 업무를 재편한다. 남은 이들의 업무가 조금 늘고 워라밸이 약간 나빠지는 수준이다.


이 상황이 수 년에 거쳐 누적되면 문제가 서서히 드러난다. 오래도록 떠나보낸 인재들이 가지고 있던 뾰족한 퍼포먼스가 사라지면서다. 그들이 회사를 떠나기 전 뿌려놓은 씨앗이 몇 차례 열매를 맺고 나면 갈수록 싹이 안 올라오는 자리가 많아진다. 타사의 S급 인재를 모셔와도 농사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다. 회사에서 성장하고 업계를 경험하며 토양을 이해하는 인사이트를 축적한 인재만큼 성과를 잘 내지 못 한다. 성장 가도를 달리는 업종에 있는 회사가 아니라면 조금씩 실적을 까먹는다.


실적이 좋을 때도 안 주던 보상을 지금와서 줄리가 없다. 남아있는 이들은 워라밸도 나빠지는데 보상도 없다고 느낀다. 박탈감을 느낄 새도 없이 곧 바로 실적 압박이 더해진다. 워라밸이 더욱 나빠진다. 올 한 해만 더 고생하잔다. 학습능력이 빠르고 합리적인 우수 인력들은 생각한다. '오래 다닐 회사는 아닌 것 같고, 이럴 거면 돈이라도 많이 받아야겠다.' 그렇게 남아있는 고급 인력들의 이탈이 시작된다. 퇴사 소식도 예전보다 더 자주 들린다.


어느 시점이 되면 퇴사는 유행처럼 번져간다. 회사의 총애를 받으며 임원을 예약한듯 보이던 최우수 직원들도 조금씩 이탈하기 시작한다. 남은 이들은 우수 인원들이 빠질수록 부담을 체감하기 시작한다. S와 A가 빠져나간 자리를 B가 수행해 낼 리 없다. B가 야근으로 매울 수 있는 공백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B 두 명이 달라붙어도 할 줄 모르는 일이 생겨난다.


슬슬 업무 공백이라고 부를만한 구멍이 생겨난다. 물이 새기 시작한다. 일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꼭 해야 하는 일에만 묶이게 된다. 항시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일에서는 시선을 거둔다. 이런 분야들이 하나 둘 늘고 방치되면 흔히 '사고'라 불리는 일이 생긴다. 큰 규모의 손실이 생기기도 한다.


작은 구멍일지라도 일단 물이 새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땜질이 어렵다. B가 죽어나간다. 일부 B들이 탈출을 시도한다. 이직이 여의치 않으니 일부는 연봉 인상을 포기하는 수준에서 이직에 성공한다. 어떤 부서는 순간적으로 기능이 마비되기도 한다. 이제 일을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그저 할 줄 아는 사람이라도 찾는 게 급선무가 된다. 급하게 채용된 경력 부대가 물 밀듯 투입된다.


각기 다른 문화와 업무 방식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며 조직 문화를 뒤섞어 놓는다. 기존 멤버들에게 혼란이 가중된다. 업무도 바로 정상화되지 않는다. 경력 입사자들 중 일부는 업무를 빠르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맞지 않는 옷을 입어 퍼포먼스를 내지 못하기도 한다.


회사는 정신을 차리고 고급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기존 S, A에게 지불하던 연봉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아마도 그 돈을 성과급으로 줬다면 인재들의 이탈을 막았겠지만 조금 늦었다. 재정이 더욱 악화한다.


임금 인상이나 보상이 계속해서 경쟁사에 밀리기 시작한다. 경력 입사자들은 손절이 빠르다. 충성심에 시력을 잃지 않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서다. 이들이 하나 둘 퇴사하기 시작하면 적색 신호가 켜진다. 이제 경력 시장에서도 나쁜 소문이 돈다. 취업사이트에 퇴직자들이 쓴 '사람을 갈아 넣고 돈도 안 준다'라는 기업 평가를 자주 볼 수 있게 된다. 이 회사는 더 이상 S급 인재를 꼬시기 어렵다.


이제 일을 못하는 이들, 경험이 없는 이들, 일을 안 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뒤엉켜 3인 4각으로 걷기 시작한다. 걸음마다 넘어지며 비효율의 역사를 써내려 간다. 레이스에서 경쟁사에게 한 바퀴를 따라잡힐 정도가 되면 조직에 조금씩 '안 될 거야'라는 패배주의가 퍼져나간다. 집안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할 때는 바가지로 쉴 새 없이 퍼내지만, 허리춤까지 차오르면 포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드디어 시스템으로 버티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더는 갈 곳 없는 직원들은 '에라 모르겠다'를 시전 한다. 노력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고, 이 모든 게 무능한 경영진 탓이라는 마인드가 싹튼다. 이제부터는 조직책임자들이 아무리 직원들을 타박하고 쪼아대도 개선되지 않는다.


이 즈음 회사에 갑자기 쇄신 열풍이 분다. 실적 악화의 원인을 찾던 경영진이 새로운 임원급 인사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다른 의도야 없겠지만 희한하게 CEO와 같은 학교 출신이거나 동향 출신들이 많다.


이들은 의기탱천한 말투와 단호한 눈빛으로 나타나, 타사에서 성공했다는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관리법을 도입하고, 목표를 다시 세팅한다. 체질 개선이라는 명목하에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근데 들어볼수록 뭔가 이 업계에 적용하기 어려운 동떨어진 이야기다. 이를테면 IT 업계에서 통할 만한 모델을 제조업에 도입하는 식이다. 당연히 잘 안된다. 직원들은 더욱 괴로워진다.


마침내 회사는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수식어를 얻는다.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떨어진다. 퇴사자가 많다는 말에 콧방귀를 끼며 '일 할 사람은 넘쳐난다'라고 큰소리치던 경영진이 드디어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런데 많이 늦었다. 연봉, 복지, 워라밸, 인센티브, 조직문화 뭐 하나 내세울 포인트가 없다. 믿고 거르는 회사가 되어 버렸다.


마지막 모습은 처량하다. 되지도 않을 혁신병에 걸려, 홈런 한 방 얻어걸리길 바라며 아무 공에나 풀스윙을 휘두른다. 시간이 갈수록 기술력도, 가격 경쟁력도, 서비스 질도 낮아지기만 한다. 마치 오른손 잡이가 왼손으로 방망이를 쥔 것처럼 뒤뚱거린다. 홈런 대신 삼진이 늘어난다. 예전에는 몇 수 아래였던 구단과 순위표가 역전된다. 감독의 침튀기는 정신 교육만 잦아진다.


어디선가 굴욕적인 인수합병 제안이라도 해온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경영진은 잘 나가던 때 기업가치에서 0이 하나 빠진 금액에 차마 사인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회사와 직원들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허무하게 흘려보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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