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극우화

시사

한국교회의 극우화

콰이어 0 30,996 12:34

딱히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어서, 귀동냥으로 현재한국교회의 극우성향의 출발과 연장 승계가 어떤 식으로 되었는지 정도만 알고 있음. 

학문적으로 누가 밀도있게 다루어줬으면 합니다.

 

조선시대 평안도는 지역 차별이 심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승진하기가 어려웠다합니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이유도 그러하였는데, 이렇듯 지역적으로 소외되고 성리학적인 질서가 느슨하였던 배경이  1890년대부터 개신교가 급 전파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고 함.

 

한 말 개화기 시대의 평안도는 개신교를 믿는 것이 근대화와 동의어로 여겨졌던 인식이 있었음. 여기서 교육받은 이는 곧 미국유학파 집단을 형성했다고 하는데(조선시대 전체 유학 인원 중 40프로가 평안도 출신), 이들은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당대의 엘리트 층으로 성장했다고 함. 일제 시대 미국에 있던 안창호와 이승만의 인맥을 통해 국내로 이어짐. 


해방 이후 소련,미군정을 거치면서 이들은 월남하였고, 미군정의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함. 각료로도 평안도 출신이 많이 유입되었다고 함.

이들은 정부 출범 초기에 미국의 비호 아래 기득권 세력이 되었음. 

 

한국전쟁 후에는 이들은 이승만과 함께했으나, 이승만이 그렇듯 쓰고나면 숙청함. 그래서 이들은 당시 한민당의 한 계파를 형성함-도산 안창호 계열의 미국 유학파라고 함.  

 

전체적인 정치적 흐름을 간단히 정리하면 그러합니다.

 

 

예를들면,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도 그런 인물(평안도출신 월남) 중 하나였다고 함. 서북청년단이 이 교회 출신이 많다고 하네요.  

방학기 만화 감격시대 마지막에 시라소니(평안도출신)가 서북청년단과 켈로부대에서 활동하다가 기독교인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데....거기가 영락교회라고 함.

조선일보 방응모도 평안도출신이군요...

 

소련군정 당시 월남한 사람들이 비슷한 경로를 타고 갔지 않을까 합니다. 

 

뿌리가 그러하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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