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에 대한 정반합적 해법
현재 많은 도덕적,윤리적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성차별,민족차별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차별
반->차별반대
합->차별반대와 차별의 혼재
이런 구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존중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안됩니다. 왜냐면 차별반대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방정식이 틀렸다 이거에요. 차별에 대항하는 차별반대는 결국 차별과 차별반대의 혼재만 결과로 도출합니다.
따라서
정->차별
반->X
합->차별의 해소
라고 할때 반의 변수를 모든 구성원이 참여할수 잇는 프로젝트로 설정해야 합니다.
차별과 혐오에 대한 정반합적 구조에서 기대되는 몇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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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분리입니다.
예를 들어 정반합에서 정을 차별주체 A는 차별객체 B를 차별 및 혐오한다 라고 봅시다.
정->A는 B를 혐오한다. 만약 여기서 반을 B는 A를 혐오한다 라고 보면
상식적으로 기대되는 합의 값은 A와 B의 분리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한국청년세대에서 관찰되는것으로 광범위한 여성혐오에 대한 반작용으로 광범위한 남성혐오가 나타나서 결과적으로 남/녀 분리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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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정이라고 하는 혐오,차별,증오에 대하여 더 큰 적이라고 하는 반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히틀러식 해법입니다. 유대인이죠.
당시 독일은 매우 혼란하고 통합이 안되고 사회갈등이 많았습니다.
히틀러는 그런 혐오,증오,분란이라는 정에 대한 반의 제시로 유태인 혐오 정확히는 유태인 국제금융이라는 음모론을 내세웠습니다.
이때 기대되는 합의 결과는 거대한 적에 대하여 기존의 갈등 세력이 뭉치는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갈등해소를 위해서 거대한 적의 존재가 요구되며, 결과적으로 그 거대한 적에 대해 싸우게 됩니다. ---> 그래서 유태인이 600만명이나 희생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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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는 그저 차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차별을 하지 맙시다 라고 외치는겁니다. 이건 도덕적으로 존중받을만하나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습니다. 서양의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간과하고 있는것이..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상태
즉 누구도 자신의 행위가 아닌 상태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상태는 달성해야 할 목표이지 달성할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는것입니다.
정->혐오
반->혐오반대
에서 기대되는 합의 상태는 혐오와 혐오반대의 혼재일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하게 현재 인간 문명에서 관찰되는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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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로 반의 부분을 더 큰 프로젝트의 제시라는 것으로 대체할수 있습니다.
사실 윤리적측면과 실제성능에서 유일하게 합격점을 줄수 있는 루트입니다.
예를 들어 흑인차별 및 혐오라는 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참전이라는 상황(반)이 있었죠.
결과적으로 그런 프로젝트에 동참하면서 기존의 갈등구조가 해소됩니다. 뭐 실제역사에서는 참전이후에도 흑인인권이 안올라가서 다들 고생햇지만...
즉 혐오를 다른 혐오로 풀면 기존 집단이 분리됩니다.
혐오를 외부집단에 대한 혐오나 혹은 내부의 융화되지 않은 집단에 대한 혐오로 해결하면 전쟁이 발생합니다.
혐오에 대해 단순히 하지 말자는 식으로 운동하면 혐오와 혐오반대의 혼재상황이 발생합니다.
유일하게 윤리적,도덕적,그리고 긍정적인 루트는 어떤 긍정적이고 야심찬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그 프로젝트 가운데 기존의 갈등구조를 제거시키는것입니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