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행위들 다 제끼고 현재 시점과 미래시점으로 이야기를 해볼게요.
정치인은 언제 크나 ? 두들겨 맞을때 큽니다. 누가 봐도 저 사람 두들겨 맞는다. 그러면 큽니다. 그걸 이겨내고 살아남으면 대통령이 되는거고 두들겨 맞기 싫어하면 대통령 못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지난 대선 끝나고 이재명은 두들겨 맞았습니다. 이낙연은 미국에 편하게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누구를 기억할까요? 대중들의 판단은 냉정하고 자기가 보기에 저 사람이어야 한다는 확신을 줄때 그 사람을 밉니다. 정치인은 표를 언제 벌고 있느냐 두들겨 맞고 피흘릴때 대중들의 표는 적립되는 겁니다. 비올때 같이 비를 맞는 사람일때 그 사람을 미는데 이낙연은 편하게 있었죠. 이낙연에 대선 이후에 폭압적인 윤석열 정권에서 대항해서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같이 싸웠으면 대권후보로의 부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낙연은 그렇지 않았죠.
지금 와서 활동한다고 그게 변할까요? 아니요. 맞을때 같이 맞아야 했는데 자기가 김대중급이라고 착각해서 미국간게 패착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현시대의 부족분을 미래시대의 가치판단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면 현시대에서 가장 결핍된 요소를 미래시대에 채우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토지겸병과 권문세족의 발호로 인하여 조선의 건국의 주요한 정당성이 된겁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욕망은 경제 입니다. 우리나라는 고용없는 성장을 했고 시대의 여망은 고용있는 성장을 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있는 성장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은 좋았으나 기득권층의 반발에 밀려서 결국은 후퇴했죠. 대통령 말을 기재부가 대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세금이 더 걷혔죠. 그 걷혀진 세금은 죄다 부자들 세금 깎아주는데 들어갔습니다.
현시대는 더 개악적이죠. 대중은 고용있는 성장을 원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마이너스죠. 그러면 이낙연이 마이너스 성장을 플러스 성장으로 바꿀수 있는 경제적 어젠다가 있어요? 없습니다. 이재명의 기본 (소득 +주택+ 금융)에 비하면 그냥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대는 고용있는 성장을 원하지만 그건 누구도 달성할수 없는 목표가 되었고 그 점은 문재인 정부도 실패했고, 그 어떤 정치인이 나와도 고용있는 성장은 안됩니다. 할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ai의 발달로 무인화의 시대가 가속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이제 인간의 일자리는 급속하게 줄어 갈거고 인간의 소비의 주체로써 기능할 것인데 인간의 소비로써 주체할려면 제도적으로 뒷바침해야 하고 그러한 기초적 작업을 이재명이 할거라는 거에요. 시대적 업무를 할 역량은 이미 충분히 보여줬고 자기 능력에 걸맞는 청사진 또한 있다. 미래 비전이라는게 있는데 이낙연은 없습니다.
두들겨 맞을때 이낙연은 미국갔고 미래를 보여달라고 말하면 기본소득 비판하는데 대안이 없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은 실현될 거고 사람들은 이제 생산의 주체에서 소비의 주체로 문법이 바뀌는데 그 준비는 이재명이 할거라는 이야기죠. 이제 강인공지능시대로 가면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의 사람들은 충분한 과실을 얻고 반대로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하는 나라는 디스토피아가 열릴겁니다. 이제는 민주주의가 정치적 가치를 넘어서 경제적 가치와 생존을 결정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이재명을 지키지 못하면 바로 디스토피아로 가게 될거고요.
한줄요약 이낙연은 이미 끝났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