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아무도 김빈을 모른다

시사

펌) 아무도 김빈을 모른다

jon 0 71,293 01.01 00:17

김빈 후보에 대하여 제가 너무 과하게 홍보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듯 하여 

한동안 자제를 하였더랬습니다.



도배를 너무 하면 짜증이 나는건 당연하죠



헌데 왜 그렇게 까지 하는지 조금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보통 여기 계신분들중에 김빈에 대하여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의 대부분이 16년도 민주당의 영입인사

그리고 여성 디자이너.



이정도로 생각하실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아시는 분들은 16년도에 청년비례로 들어왔다가 공천 못받고 억울하게 컷오프.

이후에 전국 다니면서 16년도 총선 응원.



이정도 일겁니다.

저도 그러했습니다.



헌데 김빈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나서 너무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김빈을 보면 굉장히 성공한 사업가처럼 보입니다. 
증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인물이며, *드링클립이라는 36개국에 수출한 세계적인 상품을 디자인 한 사람인만큼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 생각하죠.



*드링클립: https://www.beeeen.com/product/list.html?cate_no=53

*드링클립에 대한 설명: https://market.ddanzi.com/shop/view.php?index.no=105670237



기본적으로 금수저인 사람이 집에서 원조받아 학원 다니며, 졸업 후 디자인 하다가 성공한 것 

이게 기본적인 김빈의 인상이죠.





헌데 전혀 아닙니다.



김빈은 아버지의 사업 부도 이후, 십대시절 컨테이너 박스에 살았어요.

컨테이너 박스 두개를 연결해놓고 다섯 식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 삶이니 입시미술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입시를 10개월 남겨놓고 아버지에게 부탁해 학원을 다녔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10개월 입시학원 다니고 홍대미대에 들어간 겁니다.


"그림에 대하여 천재인 겁니다"


예를 들어 중1까지 학교다니던 사람이 학교 그만두고, 학원 다니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10개월만에 서울대에 들어갔다면, 분명 모두 천재라고 난리칠 겁니다.



홍대미대에 10개월 학원 다니고 입학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어려운 겁니다.



대게 중학교 2학년 혹은 3학년부터 입시 미술 학원에 다니던 애들이 예고를 가던지 혹은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입시미술을 3년간 지속한 후 들어가는 곳의 최고점이 서울대 미대, 홍대 미대입니다.

헌데 서울대 미대는 필기가 쎄요. 홍대 미대는 실기가 더 쎄구요.



헌데 김빈은 입시미술 학원 10개월 다니고, 실기쪽으로 승부를 본거죠.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저는 솔직히 경악을 했습니다. 이게 가능한거야?"



아무도 김빈이 그림 천재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요.

왜 아무도 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안하지? 라고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김빈 스스로는 자화자찬에 능한 스타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한 듯 합니다.

다른 이들은 몰라서 안 했을 겁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니, 이야기를 못 한겁니다.

 

왜 아무도 김빈에 대하여 몰라주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이이제이'에서 잠시 다루어진 적 있습니다-



이이제이 유튜브 김빈편 : https://m.youtube.com/watch?v=yPKmwI_FeBA&pp=ygUT7J207J207KCc7J20IOq5gOu5iA%3D%3D



김빈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는 20년도 마포갑 경선 웹자보에도 나옵니다.

거짓말이라고 주장할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아래의 자료를 퍼왔습니다.

17151336979042.jpg

2020년 마포갑에 출마한 김빈 후보의 공보물임을 밝힙니다. 출처는 김빈 블로그



중간에 화장실에서 머리 감았다는 이야기는 팟캐스트 "이이제이"에서도 다룹니다.

겨울에 머리 감을 곳이 없어서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데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들켰다는 군요.

근데 그 아주머니가 "왠 거지ㅅㄲ가 여기서 머리를 감냐"고 나무라더랍니다.



왜 회사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았을지는 상상해보면 알 수 있겠죠. 컨테이너 박스에 사니, 수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물이 나오는 아버지 회사로 가서 대충 씼었을 겁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학원비와 대학 등록금을 갚기위해 알바를 늘 3개이상 했다고 합니다. 

입시 미술학원에서 학원생들을 가르치고, 커피숍에서 서빙을 하였답니다.



아마도 입시 학원비와 등록금을 빌렸던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후 등록금을 벌기위해 고군분투 한 것도 있을테구요.

대학에 다니면서 늘 돈을 버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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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사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헌데 기묘하게도 동기들은 그녀를 매우 부자집 딸로 여겼다 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엘레강스 김'이었다고 합니다.



앞에서 대놓고 부른 별명이 아닌 뒤에서 부른 별명이었던 듯 싶더군요.


그녀의 후배들은 그녀에 대하여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답니다.
'김빈은 집안에 헬기가 있고, 헬기 조종같은 걸 할 수 있는 사람' 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답니다.

즉 어마어마한 재벌 3세쯤으로 본 게죠.

 


도대체 왜 저렇게 봤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저 역시 16년도 1월11일 이후 언론에 비춰진 김빈을 보면서 20~30억쯤 있는 자산가로 알았더랬습니다.



그렇게 오해를 할 만한 이유가 늘 명품을 입고 다니는 듯 하고, 어느정도 돈이 있으니까 이제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권에 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게 당연하잖아요?



헌데 전혀 아니더란 말이죠.



16년도 영입 당시 김빈은 빚에 허덕이고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한 부채가 어마어마했으며, 그 이자만 한달에 천만원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얼마의 빚이 있으면, 한달에 이자만 천만원 가까이 나올까요.
솔직히 상상이 가지 않더군요.

저정도 빚이면 지금까지 해결이 안되었을 듯 해요.

 

그러니 김빈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부채를 떠안고 사업을 했겠죠. 헌데 이게 해결이 안되더랍니다.

-한국에서 차세대 여성 리더라고 06년 09년에 선정되었으며 한국및 전세계의 가장 유명한 디자인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는데도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알게된 순간부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고 잠이 안오더군요.

 

*이에 대한 증거 영상을 올립니다.
(5분20초경에 나옵니다)

https://youtu.be/-ba3xOPZ5rU


이게 16년도 1월11일 당에 영입되고 나서 만든 영상인 듯 합니다.

16년 3월14일날 청년비례 공천에서 5분만에 탈락했는데, 영상이 3월14일과 19일에 올라왔더군요.
저 영상보면 당에서 준비해준 듯 한데..어떻게 공천 탈락하고 나서 홍보영상을 올려주냔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김빈에 대하여 모를 수 밖에요.




명품같은건 입을래야 입을 수 없었고, 미용실도 1년에 한번 갈까말까 였다고 합니다.

김빈은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아무리 죽도록 일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게 사회의 시스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듯 싶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실패를 하게 된 이유가 국가의 고환율 정책때문이라고 하는걸로 봐서 당연한 일이겠죠.

-실제로 고환율 정책을 펴면, 수출 기업인 대기업은 이익을 크게보고, 수입하여 가공하여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손해를 봅니다-
 

그래서 정치와 역사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과거의 인물들 중 자기처럼 고생했던 인물들에 대하여 공부하며 위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 분명 사회시스템이 잘못된것이라 생각하여 강연장에서 사회문제를 이야기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중 민주당에서 영입 제안이 오니, 받아들인게죠.





16년 3월14일 청년 비례 공천에서 컷오프 당하고 더컷당을 만들어서 전국으로 민주당 총선을 응원하러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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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세번째가 김빈입니다. 대충 저 멤버가 전국을 돌아다닙니다. 당에서 돈준것도 아니고 자비로 돌아다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서 16년 7월 15일  김광진의 톡쇼 (김빈, 정치를 디자인하다) 라는 방송에서 다시 돈 벌기위해 중국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말하자면 계속 빚에 허덕였던 겁니다.



그럼 도대체 왜 나는 김빈이 명품을 걸치고 다닌다고 생각을 한 걸까? 이건 저만의 착각이 아닙니다.
그녀의 학우나 후배들 역시 그렇게 느꼈던게죠.



그런 사람들이 있나 보더군요. 그냥 어느정도 브랜드 옷을 입어도 명품을 걸친 것 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 듯 합니다.


실물의 김빈은 얼굴이 진짜 작고 이목구비가 크다고 합니다.

 

키도 175 이상이니 늘씬하겠죠. 모델같아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옷태가 잘 받아 그렇게 느끼게 만든게 아닌가 싶더군요.

돌이켜보면 민주당이란 곳에 와서 명품을 입는다는건 절대 말이 안되죠. 그럴 수도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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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면서도 돈을 벌기위해 온갖 일을 하면서도 학점은 잘 받았던 듯 싶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엘지전자에 바로 입사했겠죠.



헌데 안타깝게도 이 당시의 김빈에 대하여 다루어진 방송이 없습니다.

언론에도 이 당시의 이야기는 전혀 없더군요.



다만 '딴지 이너뷰'라는 유튜브 방송에서 지나가 듯 이야기합니다.

*딴지 이너뷰: https://m.youtube.com/watch?v=SRp6uUfiRqE&t=2s&pp=ygUG6rmA67mI 







2005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엘지전자에 입사를 합니다.

그리고 휴대폰의 디자인을 하게 되죠. 허나 회사 생활을 하는내내 창업을 꿈꿨다고 합니다.

자신이 무언가 만드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던 만큼 자기 상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늘 그림만 그리던 그리고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래서 어릴적 꿈이 발명가였던 그녀는 

두가지가 합쳐진 제품 디자인을 하게 된 듯 싶습니다.



창업이 꿈이었던 김빈은 회사 생활 하는동안 끊임없이 창업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그냥 회사를 다니면서 시키는 일이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게죠.

회사에서 시키는 모든 일을 창업을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12시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하더군요.




창업에 필요한 공부를 하기위해 다양한 부서의 경험을 합니다.

5개의 부서에서 디자인전략, 디자인경영, 콘셉트디자인, 고객조사 마저도 창업의 준비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 합니다.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연구소, 디자인 전략팀, 디자인 경영 그룹 등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편 사업을 하여 돈을 벌고 싶었다고 보여져요.당연하겠죠. 아버지의 부채를 어떻게 하느냔 말입니다.

 

사업을 하여 성공하여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겠죠.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다음편에 계속하겠습니다



다음편에선 한국에서의 좌절, 소송, 중국으로 사업체 찾으러 다니던 이야기 그리고 흑사회 연루된 택시 운전수에 납치

유럽에서의 사기 당했던 일등에 대하여 이야기 될 듯 합니다.




64년생 이재명은 가장 밑바닦에서 가장 위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허나 82년생 여자 이재명은 투명한 천장에 갖혀 버린듯 하더군요.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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