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 노적봉 ⓒ 최오균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저 바위에 볏짚을 덮어서
마치 많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하여
우리 군사 수가 많은 것처럼 왜구들을 속였다는 일화가 전해짐.
그 [노적봉]이 가사에 나오는 노래.
목포의 눈물
(가사)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지는가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는 절개 목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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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에 발표된 노래.
이 노래는 얼핏 들으면 단순한 사랑이야기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다음 가사를 보면 알 수 있음.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당시는 임진왜란 이후 약 삼백년이 지난 때였고
[노적봉]은 이순신장군을 상징하는 바위.
즉
이 노래는 독립의 염원이 담겨있는 노래이며
그래서 관련자들이 조선총독부에 끌려감.
그래서 '삼백 년 원한 품은'이 아니라 '삼백련(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이라 주장하고
가사를 고쳤다가
해방 이후에 다시 환원.
이 노래가 한국사람들의 심금을 크게 울리는 것은
단순한 사랑(연애)이야기에 그치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인 듯.
1938년 발표된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는 노래 역시
당시 '이시우'라는 작곡자가 만주에 순회공연 갔다가
어느 여관에 들었는데 옆방에서 밤새 홀로 흐느껴우는 여인이 있었고
사정을 알고보니 남편이 독립운동하다가 사형당해서였다함.
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인데
당시 일제 때라 가사를 단지 사랑이야기인 것처럼 썼지만
사실은 그 차원 이상이었고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의 심금을 오랫동안 울리고 있는 듯.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