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mu.wiki/w/%EC%A7%84%EB%A0%B9%EA%B5%B0
1882년 임오군란 때 성난 군사들에게 죽을 뻔한 명성황후가 충주 장호원까지 도망갔다 50여 일만에 환궁하였다. 이때 왕비는 한 무녀를 데리고 왔고 고종은 ‘진실로 영험하다’는 뜻의 진령군이란 작호를 내렸다.
진령군이 이토록 파격적인 출세를 한 계기는 왕비가 죽음의 공포와 절망 속에서 지낼 때 점을 쳐 주었기 때문이다. 왕비가 숨어 지내기 하도 갑갑하여 민응식이 불러온 무당이 진령군이었는데 자칭 관우의 딸이라 하였다 한다. 이때 진령군은 왕비가 자신과 만난 날로부터 50일 이내에 환궁할 것이라며 상당히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줬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녀가 예언한 그 날짜에 환궁하게 되자 왕비를 따라 나선 것이다.
그후 궁중의 무녀가 되어 왕실을 위해 산천 기도, 굿과 제사를 맡았다. 이렇게 신분상승을 한 그녀는 양반을 벼슬에 임명하고 내쫓는 것도 마음대로일 만큼 권세를 휘둘렀다. 진령군에게는 김창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당상관의 관복을 입고 다니며 실세 노릇을 하자 조정의 고위 관료들 중 몇몇은 진령군과 의남매를 맺거나 의자(義子)가 되기까지 했다[2].
허약한 세자(순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 굿을 하고 금강산 1만 2천 봉마다에 쌀 한 섬과 돈 열 냥씩을 바쳤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관우의 딸이라고 자칭하면서 나랏돈으로 서울 북방에 관우 사당인 북묘를 건립하고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억만금을 벌었는데, 왕과 왕비는 여기 자주 찾아와 점도 치고 굿도 하였다.
진령군의 세도가 세상을 흔든지도 어느덧 11년. 대담무쌍하게 목숨을 걸고 진령군을 통렬히 규탄하는 상소를 올린 선비가 있었으니 사간원 정언 안효제였다. 고종은 대노하여 그를 추자도로 귀양 보냈다. 3년 뒤 안효제는 귀양이 풀렸고 다시 벼슬이 내려졌으나 사양한 후 낙향했다. 이후로 강직한 선비들이 앞다투어 그녀를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도승지가 감히 고종에게 올리지 못하고 쌓아 두고 있었다.
- 중략 -
그만 ARABOZA~JA~
딱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랑 비슷한듯~
진령군마마~~~~
진령군은 그녀인데 이제는 그놈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찍왈 조선이 망한건 고종과 명성왕후때문이다!! 라던데..
고로 이 나라가 제대로 작날나면 작살난 이유는 니들 때문에라는
자백으로 인정?해도 되는 부분? 자백? ㅇㅋㄷㅋ??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