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추모를 꾸짖었던 조선일보 기사(1965년 7월 23일)

시사

이승만 추모를 꾸짖었던 조선일보 기사(1965년 7월 23일)

대양거황 0 53,429 01.27 15:02

지금이 자유당 천하인가

조선일보 1965년 7월 23일 기사 사설 


고 이박사의 장례식을 둘러싼 물의에 붙임


유소보장에 만인이 울어 내나,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쓸쓸히 메어내나, 죽은 이가 알리 없고, 가는 곳이란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김에 봉우리 하나 뫼를 써서 영겁의 잠을 자는 것이 인생의 종막인 것이다. 영웅호걸도 절세미인도 또한 초동목수도 이 만고의 철리 앞에는 평등한 것이니, 따지고 보면 장례란, 고인을 위하기 보단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남은 연고자들의 정성이요, 체면일 것도 같다. 또한 자고로 생전에 고인과 아무리 원수가 되었더라도 죽음이란 엄숙한 운명 앞에는 과거의 모든 사원(주: 개인적인 원한)을 풀고 경건히 애도해 온 것을 우리는 동양도덕의 미점(아름다운 점)으로 삼아왔으며, 만송에 같이 곡해주는 감상을 우리 민족성은 체내에 연면히 이어 왔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를 전제로 지난 십구일 이승만 박사의 부음을 듣고는 그분의 지난날의 허물을 거의 논함이 없이 오직 이 나라 역사에 좋은 면이건 언짢은 면이건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거인이라는데서 순수한 애도의 뜻을 아끼지 않았고 시체에 매질하는 비정을 삼가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이승만 박사에게 보내는 최후의 연민이요, 애정인 것이지, 그분을 이나라의 영웅으로 받들려거나 또는 사일구에서 내려진 준엄한 정치적 심판을 재평가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이와 같은 사정(개인적인 감정)과 공도(공적인 길)를 혼돈하지 않기 위했고, 또한 부질없는 소음으로 고인을 도리어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하여도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하자는 일부 인사들의 책동을 경계하여 개인 자격에 의한 상응한 장례로 대할 것을 권고하는 조심성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뿐 아니라 여론을 형성하는 대부분의 신문들도 대동소이로 과공(잘못과 잘한 일)의 비례 없기를 다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와 같은 애도의 정을 어떠한 아전인수로 받아들였는지, 구 자유당의 잔당들은 방자하게도 대표를 뽑아 국장을 정부 당국에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사태로 발전하였다. 하도 어이가 없기에 그 후의 진전을 관망하였더니, 정부는 어떤 기준에서 지명했는지는 모르나, 일부 인사들을 각계 대표라는 명칭 아래 협의를 가져 그 건의에 따른다는 형식으로 이십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장을 거행한다고 내정한 바 있었다. 국가의 강상을 어지럽히는 무엄한 결정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꾹 참았다. 왜냐하면 장례라는 형식 하나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망령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 아니라 가뜩이나 한일협정 비준 여부로 민심이 뒤숭숭한 이때, 또다시 장의 하나를 두고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외국 사람 보기에도 창피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장을 해도 무관하다는 데서가 아니다. 역사의 가치판단조차 할 줄을 모르고 이런 오단(잘못된 판단)을 한 정부 당국에 대한 심판은 장례 후에 다시 논하기로 하고 우선 참기 어려운 일이라도 참아보자는 국민적 금도에서였을 뿐인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사월혁명 관계 각 위체에서 맹렬한 반대성토가 일어났고, 일부 청년들은 단식투쟁으로 정부처사에 항의하기 시작하였다. 사월혁명이 민주역사의 금자탑이요, 오일육이 사일구의 연장이라는 혁명정부시대의 선포가 거짓말이 아니며, 또한 현 헌법의 사일구 의거와 오일륙 혁명의 이념에 입각했다는 전문이 결코 공문(공허한 헛된 글)이 아니라면, 이들의 벌떠(벌떼의 오타) 같은 항의는 너무나도 당연한 항의인 것이며, 일백팔십칠주의 사일구 영령이 명목할 수 없는 통한사임에 틀림없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형세는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위 국민장 준비소위원회를 중심으로 22일 국회의장공관에서 약 사십명의 사회저명인사들이 모여 연석회의를 한 끝에 국민장으로 불만이라 하여 국장으로 하자는 의견이 우세하여, 오늘 국무회의에서 그 문제를 재고하겠다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한다. 이쯤되면 유출유괴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도대체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장 이상의 국장이란 격식이 어떠한 예전에 있ㅎ는지 우리는 그 근거조차 모르고 있거니와 가사 새로 국장이라는 최고 격식을 만들면 안 될 것도 없다 하더라도 오년 전의 망명정객이 오년 후엔 국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자유당 반정이라도 있어서 자유당 천하로 바뀌었는지 그것부터 먼저 밝혀 놓고 볼 일이다. 말하기는 안 됐지만, 그 회의에 모인 이른바 사회 저명 인사라는 것이 또 무엇인가. 정부 대표와 일부 예외 인사를 제외하고는 상당한 사람이 자유당 정권 시대에 이박사 우익 밑에서 그 은고(은혜)로 자라난 인사들로 구성됐으니 거기에서 나올 결론도 불문가지(묻지 않아도 암)의 일이다. 정치적으로 분석하면 이박사의 별세를 기화(기회)로 지난 날의 독재와 부정선거에서 낙인 찍힌 반민주행위의 죄과(죄와 잘못)을 일거에 씻어버리고 자유당 르네상스의 발판으로나 삼자는 저의가 아닌가 하고 의심이 안 갈 수 없고, 어떤 견지에서 제법 지명인사, 연하는 사람 가운데는 자기의 사후까지 생각하여 월등 격이 높은 이박사를 국장으로 해놓아야 자신들이 국민장 또는 사회장의 서열에 끼일 수 있을 것이라고 포석하는 사람도 혹 개중에는 없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면 지나친 색안경일까, 폐일언하고 어불성설인 것이다. 아무리 격정적이고, 감상적이고 건망증이 심한 것이 한국의 국민성이라 할지라도 노정치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한줄기 눈물을 흘려주는 따뜻한 국민들의 아량을 짓밟아 그것을 미끼로 역사를 바꾸는 국가적 과오를 범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거듭 말하거니와 죽은 이의 공죄(잘못과 죄)를 지금 따지고 싶지 않은 것은 우리 국민들의 금도요, 순박무비한 도량인 것이다. 그렇다고 공만 헤아리고 죄는 없어진다는 논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박사의 어떤 연척은 "국장이 아닐 바에야 차라리 깨끗한 시족장으로 하는 것이 낫겠다"고 울부짖었다고 했다. 연척으로서는 의당한 심정일 것도 같다. 우리는 사월혁명 관계 단체의 항의와 이런 연척의 불만 가운데서 곰곰이 생각할 때 (중략) 


격식이 문제가 아니라 진실로 이박사가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면 인산인해를 이루어 국장보다도 더 영광스러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지금이 자유당의 세력 연장 천하가 아니요, 사월혁명정신이 계승되고 있다면 이박사 장례격식을 가지고 더이상 물의를 일으키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집권 시에 무슨 악독한 짓을 해도 해가 가고 세월이 흐르면 잊어진다는 나쁜 전통으로 국가와 사회기강을 흐리게 하여, 만일의 경우 그에 기대고 싶은 저의라도 없는 한, 국무회의는 문학소년 같은 감상을 단호히 버려야 한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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