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검사
모든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검찰이 디올백 사건을 무혐의 결정하면서 ‘법률가 양심’ 운운했다는 기사를 친구들이 제게 보내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간부들에 대한 감찰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가 예상했던 대로 비위 인정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계속 받았는데,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보니 검찰은 이유를 따로 설명하며 이해시키려 노력한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검찰과 다른 척하면서 그때와 달리 스스로 개혁하는 체, 정의로운 체하던 문재인 정부의 검찰로서는 저의 공개 비판이 많이 부담스러웠을 테니까요.
‘간부가 위법한 줄 모르고 위법한 지시를 한 것이라, 그 간부에게 위법성의 인식이 없었고, 따라서 징계할 수 없다’ 등의 궤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전화로 구차한 설명을 하며 ‘검사로서의 양심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고 우기는 감찰 담당 검사에게 언성을 높였습니다. “검사에게 양심이 어디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상명하복을 보았을 뿐, 검사의 양심과 용기를 저는 거의 보지 못했거든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징계와 형사처벌 없이 공연음란 제주지검장의 사표를 신속하게 수리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비판하며 “당당한 검찰입니까,
뻔뻔한 검찰입니까. 법무부(法務部)입니까, 법무부(法無部)입니까”라고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청와대 회의에 제 이름이 거론되는 등 법무부, 대검 수뇌부의 분노가 들끓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고통스러웠으니까요. 박근혜 정부의 검찰, 문재인 정부의 검찰,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검찰 구성원도 같고 상명하복 조직문화도 같은 한 몸으로, 검찰의 검찰이었을 뿐입니다.
제 한결같은 답변에 어느 친구가 답답한 듯 다시 묻더군요. “그래서, 검찰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 같으냐”고. 현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인 조희진 의정부지검장이 ’검찰이 예전에 비해 얼마나 깨끗해졌는데,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느냐‘고 저를 질책한 적이 있어요.
예전에 비해 우리 검찰이 한결 깨끗해진 건 맞지만, 시민들은 예전의 검찰과 지금의 검찰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현행 법령과 높은 시민의식에 터 잡아 마땅히 있어야 할 이상적인 검찰과 현실의 검찰을 비교하는 것이고,
세상이 투명해져 우리 검찰이 법과 원칙, 양심 운운 등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말이 아니라, 검찰의 드러난 행태를 보고 시민들이 검찰의 잘잘못을 판단하고 있는데, 검사장쯤 되어 저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한심하여 혀를 찼었습니다.
검찰권은 우리 검찰이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권력이 아님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검찰에게 위임한 것이지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주권자 시민들에게 있으니까요. 시민들의 인내가 언제까지일지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법률가 양심’ 운운 기사를 보며 검찰이 감당할 수 없는 검찰권을 반납해야 할 때가 머지않았구나 싶어 검찰 구성원으로 참담한 마음입니다만,
이 또한 검찰의 업보이니 검찰 구성원으로서 감당해야겠지요. 검찰 안에서 제 몫을 감당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