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쯤이었다. 학과 1학년 남학생 둘이서 강의 시작하기 전에 매양 티격태격하더니, 어느 날엔가는 유튜브 영상을 들고 와서 시시비비를 따져 묻기에 이르렀다. 5.18 북한 개입설부터 조국, 친중 좌파,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둘은 각자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들을 늘어놓고는 어떤 게 ‘가짜 뉴스’냐며 ‘팩트 체크’를 부탁했다. 한 명은 ‘좌파 유튜브’, 또 한 명은 ‘우파 유튜브’ 채널 영상을 모아놓았다. 담당한 강의는 ‘사회읽기와 토론’이었는데, 두 학생은 ‘토론 배틀’에서 어떻게든 이겨먹으려고 서로 편을 가르고 열심히 상대방과 싸웠다. 둘은 언제나 ‘커뮤니티’에서 봤던 이야기와 자신들이 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들은 이야기를 준거점으로 논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애썼다.
사실 20대 남성들의 생각을 명확하게 확인하긴 어렵다. 새벽에 EPL 축구를 보고, 게임을 하고, 게임 커뮤니티(예: fmkorea)에 들어가서 글을 읽고 댓글을 달고, 축구 유튜브를 보다가 정치 유튜브를 본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끔 ‘가짜 뉴스’를 읊길래 한 마디 하면, “저 일베 아닌데요?” 하면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정도였다. 온라인만 보면 한편에서 ‘일베’ ‘백래시’ ‘코인 떡상’ ‘공정’ ‘반중정서’로 엮이는 남성들이, 2015년을 분기점으로 ‘리부트’ 되어서 ‘강남역’ ‘워마드’ ‘메갈’, ‘대학로’ 같은 단어로 묶였던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여러 전장에서 ‘젠더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학생들 대다수가 그 전선에 깊이 연류되어 있다는 판단은 하기 어려웠다. 온라인의 정서만 가지고 20대들의 정치적 입장을 추론하는 건 도무지 막막하다.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1대 총선과 20대 대통령선거, 8회 지방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잘 모른다. 그런 ‘TMI’를 학생들에게 캐물은 적은 있었다. 문답을 주고받다가 결국 답답해서 예전 20여 년 전 학생운동 언저리에서의 사회과학 공부나, 진보정당 활동이나, 촛불집회나, 또 ‘청년 논객’ 하던 시절 이야기를 ‘꼰대’의 ‘라떼’ 버전으로 강의하다가 멈췄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선거 당시 성별을 가리지 않고 20대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20대 남성들은 점차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들이 크게 부각되진 않았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와 그리고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이 얻은 비례대표에 기대서 ‘180석’의 거대 여당이 됐다. 20대 남성들의 표심 이탈이 지적된 적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잘 언급되진 않았다. 2021년, 20대 총선에서 참패해 지리멸렬하던 미래통합당의 후신 국민의힘 초대 전당대회에서 36세의 0선 의원 이준석은 헌정 사상 최연소 당수이자 최초의 30대 당수가 된다. 이준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당대표로 만든 것이 ‘이대남(20대 남자)’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이대남은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그 파괴력을 입증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20대 남성의 70%가 국민의힘 오세훈을 지지했다.
여론은 도대체 이대남이 누군지, 어떤 성향인지 주목하기 시작했다. ‘인국공 사태(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와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나는 시험공부를 통해 쟁취해야 하는 ‘공정’에 예민한 20대의 성향이 이대남의 정체성에 덧씌워졌다. 페미니즘에 반대하고, 중국의 각종 공정(동북공정, 김치공정…)에 반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며, ‘벼락거지’를 면하기 위해 주식이나 암호화폐 투자에 올인하며, 조국 사태와 공공 의대의 추천전형에 분노하며 공정에 집착하는, 또 이준석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 집단으로서 이대남의 형상이 탄생했다. 이준석은 이대남의 ‘화력’에 힘입어 대선후보 윤석열로 하여금 ‘여성가족부 폐지’ 메시지(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를 ‘좋아 빠르게 가’ 하며 내게끔 이끌었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58.7%가 윤석열을 찍었다.
선거 결과와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이대남은 뚜렷한 정치적 실체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민주당에 대한 강한 지지 성향을 가진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와 1970년대생들은 이대남을 보며 배신감에 떨었고, 대선 과정에서 ‘이찍남(2번 찍은 남자)’이라는 조어를 만들며 혐오와 경멸을 하기 시작했다. 일련의 사태는 민주화 이후 민주당 계열이나 정의당 등 진보정당(이하 민주-진보 정당)에 대한 견고한 선호를 드러냈던 ‘진보적인 20대’(1990년대생)가, 2020년대에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변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러한가?
본말이 전도되었고, 선후가 뒤집혔다. 우선 이대남이 멀쩡한 민주-진보 정당을 찍지 않은 게 아니라, 이대남이 민주-진보 정당에서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비토한 것이다. 정치사회 담론을 말하고 쓰는 적지 않은 이들이 이대남이 한편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때문에,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공정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보수화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이대남이 우리를 버렸다’고 해석했던 바로 그 민주당이 20대 대선 이후 내놓은 ‘새로고침 보고서’에서조차 보수주의자 이대남은 발견되지 않는다. 복잡한 보고서를 20대 남성에 집중해 요약하자면, 20대 남성 가운데 최대 다수 그룹은 격차 해소와 복지, 혁신 성장, 기후위기 극복을 바랐다. 다음 순위 그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자영업자 지원과 소득·주거·일자리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이러한 가치들이 보수적인 가치들인가? 오히려 민주당이 지지하는 진보적 가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대남은 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가? 이대남이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를 민주당이 충분히 실현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심지어 이 보고서를 보면 20대 남성 층에서 국민의힘이 대변하는 능력주의 보수에 대한 지지는 생각보다 옅다. 20대 유권자는 자신들이 지지한 정당이 왜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정당은 유권자들이 왜 한 번 찍은 정당을 지켜주지 않고 배신했느냐며 욕을 해댄 셈이다. 국민의힘이 이런 아귀를 비집고 들어가 ‘공정’과 ‘반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하나의 신기루를 조직해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대남’이라는 신기루에 몰두하다 보니 생기는 더 큰 문제는 성별 외에도 고려해야 할 다양한 차이들, 계층과 지역에 따른 선명한 차이를 간과하게 된다는 데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과 대규모 서비스업이 입지한 수도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역은 주로 남성들이 참여하는 제조업에 의존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는 사회적 경제나 돌봄 노동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 ‘선망 직종’으로 분류되는 전문직, 대기업 사무직(이른바 ‘킹무직’), 공공부문 일자리 자체가 지방에는 희소하다. 선망 직종(15~30%) 구직자를 제외하면 시험을 통한 공정을 요구하는 ‘능력주의 보수’를 지지하는 이대남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와 같다. 지방 산업도시의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인 대기업 대공장은 더 이상 정규직(이른바 ‘킹산직’)을 대규모로 뽑지 않는다. 지방의 남성 청년들은 대기업의 N차 하청, 50인 이하 중소기업, 다단계 하도급 물량팀(초단기계약직 생산직) 중 하나를 본인의 직업으로 고려해야 한다. 온라인의 여성가족부·페미니즘에 대한 혐오 역시 ‘역차별’에 대한 반감으로만 읽어내기보다는, 남성 혼자 4인 가족을 꾸려내왔던 ‘남성생계부양자 정상가족’이 와해되는 상황 속에서 86세대 아버지들이 가졌던 자원과 권능을 누릴 수 없게 된 20대 남성들의 불만과 불안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대책도 대안도 마련하기 어렵다. 20대 남성을 이찍남이라 조롱하거나, ‘참교육’이 필요하다는 ‘정의로운 발언’을 외쳐봐야 소통을 악화시킬 뿐이다. 만약 ‘능력주의’ 게임의 문법이 아닌, 지방에서 ‘커리어 형성’은 커녕 ‘최저임금’에 수렴되는 임금을 받는 다수 여성 청년들과 남성 청년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정치적 기획이 작동한다면 보수주의자 이대남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아니, 보수주의자 이대남은 2024년 총선 과정에서 이미 사라져가고 있다. 20대 남성은 이제 국민의힘도, 이준석도, 그 누구에 대한 신뢰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남이라는 신기루가 한때 작동했던 이유는 기성 정치가 잡지 못한 ‘청년’을, 능력주의와 젠더 갈등이라는 ‘떡밥’으로 몇 년간 일시적으로 낚았다고 봐야 한다. 정치가 지지층을 만족시키지 않을 때 누군가는 다른 정당을 선택하고, 다른 누군가는 정치로부터 관심을 끊는다. 이제 정당정치가 어떻게 청년들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줌으로써 지지자 동맹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가의 질문이 남는다.
정치 유튜브를 열심히 보던 두 명의 학생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했다. 요새는 어떤 유튜브를 보고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노느냐고 묻자, 이제 그런 채널 안 보고 실생활에 도움 되는 요리 채널 같은 정보 채널을 본다며 농을 친다. 속내를 알 수 없다. 정치학에서 정치에 대한 표준 정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라 했다. 청년들이 찾을 수 있는 ‘몫’을 정치가 명료하게 제시하지 않을 때, ‘집토끼’는 ‘다른 집 토끼’가 되거나 ‘산토끼’가 되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2024년의 총선과 정당정치는 길 잃은 토끼들에게 어떤 희망 섞인 선택지를 줄까. 일단 온라인과 수도권 바깥의 청년의 목소리부터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양승훈은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거주지인 서울과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을 오가며 강의하고, 엔지니어와 도시를 연구한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를 썼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