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만일 현재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자칭 보수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올려지고,
자칭 보수단체들에게 좌빨 빨갱이로 몰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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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피카소의 그림이다. 제목은 Massacre in Korea이다. 해석하자면 '한국의 학살'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도에 이 그림을 그렸다. 1950년에 발생한 '신천 학살' 혹은 '신천군 사건' 소식을 듣고 나서 그린 작품이다.
신천 학살은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 동안 황해도 신천군에서 신천군 주민의 1/4에 달하는 35,0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이다. 신천 학살이 전 세계에 뉴스로 보도되자 당시 서구 사회는 경악했다. 파리에 머물던 피카소가 1937년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게르니카'를 그렸던 것처럼, 신천 학살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말이다.
오랫동안 피카소의 그림 속에 갇혀 있던 신천군 사건이 한국에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2001년 소설가 황석영이 신천군 사건을 소재로 한 '손님'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이 소설에서 신천군 사건은 기독교 우파와 좌파 간의 대립으로 인해 벌어진 일로 묘사됐다.
지난 2006년 한겨레신문이 인용한 이북5도민회 산하 신천군민회의 '10·13 동지회’는 신천군 사건, 혹은 신천 학살은 "신천군내 반공청년들"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지회 회원 중 한 명은 "미군이 오면 빨갱이를 살려둘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복에 나선 것"이라고 증언했다.
신천 학살을 주동한 반공청년단은 신천군 사건보다 먼저 벌어졌던 제주 4.3 사건에서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한 '서북청년단'과도 흡사하다(프레시안 기사 '역사로 보는 서북청년단, 대체 어땠길래?' 참조).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단체들이 모여서 1946년 11월에 창단한 서북청년단은 빨갱이들은 씨를 말려야한다며 제주도로 들어가 학살극을 벌였다. 서북청년단 회원이자 이승만의 친위대였던 안두희는 1949년도에 백범 김구를 살해했다. 이승만 정부를 대신해 손에 피를 묻히고 날뛴 그들은 한국의 나치친위대였다.
지난 9월 2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리본을 강제로 철거하려 했던 극우단체는 자신들을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라고 불렀다. 이는 독일 극우파가 스스로를 '나치친위대 재건 준비위원회'라고 부르거나, 일본 극우파가 스스로를 '대일본제국 가미카제 재건 준비위원회'라고 부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에 "서북청년단은 지존파보다 훨씬 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 지존파 재건위가 마땅히 처벌되어야 하듯이, 서북청년단 재건위도 처벌되어야 한다”고 썼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광복 이후 결성되었던 서북청년단은 한국에서 재현된 독일의 나치 친위대라 할 정도로 부끄럽고 끔찍하며 창피한 역사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구성 단위로 지속가능한 사회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면 저 단체를 심각한 혐오 범죄로 분류해 관리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모든 건 극소수의 돌발적인 행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건 극우단체가 얼굴을 내보이며 광장으로 나왔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서북청년단은 보수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나치즘과 파시즘이다. 피카소가 저 위대한 걸작으로 역사에 남겨놓은 학살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