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정치소설 범인 #3

시사

가상 정치소설 범인 #3

이미사용중인 0 14,493 06.24 09:09
가상 정치 소설 

<범인(犯人)>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으나 모든 등장인물 및 단체는 작가가 창작한 허구이며 현실의 인물 및 단체와는 그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3화 공동정범(共同正犯) PART 1 

*공동정범(共同正犯) -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죄를 범함 (형법 제30조)   


 최 상병(사망 당시 계급은 일병이었지만 사망 후 추서되어 1계급 진급)사망 사건을 수사 중이던 박정운 대령은 다른 의미의 피로감을 느꼈다. 사건의 수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 정도 지난 지금, 수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이고 이제 경북경찰청으로의 이첩과정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박정운 대령은 이 사건에 있어서 전에 없던 피로감을 느껴야 했다. 이 사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싶었다. 

 윤성열 대통령은 사건 다음날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대통령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수사본부에 사건수사 진행상황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박 대령은 이런 요구들을 거절하느라 제대로 수사지휘를 하지 못 할 지경이었다. 

 대통령실의 요구를 거절하자 이번에는 김계관 해병대 사령관이나 이중섭 국방부장관을 통한 수사자료 요구가 있었다. 박정운 대령은 이러한 요구들도 모두 거절하며 우직하게 수사관들을 독려하며 수사를 진행해 나갔다. 그 덕에 내일 언론 브리핑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 대령이 이러한 상념에 젖어들고 있을때 김계관 해병대 사령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필승! 해병대 수사단장 대령 박정운입니다." 

 "어, 그래 수고가 많다. 내일 언론 브리핑은 잘 준비되고 있나?"

 "예, 지금 브리핑 자료 정리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료 대통령실로 하나 보내주면 안되나?" 

 대통령실에서 얼마나 닦달을 해댔으면 쓰리스타 사령관이 일개 대령에게 이런 부탁까지 하게 만드나 싶은 생각에 박 대령은 김 사령관에게 측은한 감정까지 느꼈다.

 "예, 정리되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박 대령은 체념하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또 마음 한편으로는 계급을 내세워 명령하지 않고 이렇게 부탁을 하는 김 사령관에게 인간적인 호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고맙다. 알다시피 VIP가 이 사건에 관심이 많잖냐. 그래서 대통령실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야." 

 고작 브리핑 자료 하나에 이렇게 반색을 하는 사령관의 목소리를 들으니 좀 더 일찍 보내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령관과의 통화가 끝나고 나서 박 대령은 대통령실 군사보좌관 중 한명에게 언론 브리핑 자료를 보냈다. 그 브리핑 자료에는 임상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한 8명의 혐의사실이 적시되어 있었다. 이미 국방부장관이 승인한 내용이었다. 이제 내일 언론 브리핑만 끝나면 수사자료는 이 내용 그대로 경북 경찰청으로 이첩되고 이제 이 사건은 군의 손을 떠나게 된다. 


 임상근 해병대 1사단장은 윤성열 대통령을 처음으로 대면했던 2022년 9월을 회상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 첫 해였던 2022년 여름은 기록적인 폭우로 수해가 잇따르고 특히 수도권에서의 수해대응 실패로 윤성열 정권은 연일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던 시기였다. 거기다가 9월 한반도에 상륙한 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지역에서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윤성열 정권에 대한 여론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 때 임상근 사단장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과 수륙양용 장갑차까지 동원해 포항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하면서 언론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윤성열 대통령이 포항을 방문해 직접 임 사단장과 해병대원들을 격려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를 계기로 임 사단장은 윤 대통령에게 줄을 댈 수 있었고 차기 해병대 사령관으로 거론될 정도의 위치가 될 수 있었다. 

 임 사단장이 앞으로의 출세가도에 확실히 도장을 찍기 위해서는 한 번 더 대통령의 눈에 들 필요가 있었다. 마침 또 다시 경북지역에 폭우가 쏟아졌고 수해가 일어나 수해복구를 위해 군이 대민지원에 나섰다. 임 사단장은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수해현장에서 자신의 지휘 하에 해병대가 또 공을 세운다면 차기 해병대 사령관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임 사단장의 바람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수해현장에서의 작전 명령권은 육군 50사단장에게만 있었고 따라서 해병대는 임 사단장이 아닌 육군 사단장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공을 세울 만한 작전은 육군이 수행하고 해병대는 그저 육군의 뒤치다꺼리만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임 사단장은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군의 명령체계는 무시하고 자신이 직접 해병대를 지휘하기로 했다. 

 원래 해병대가 수행하기로 했던 임무는 수해복구였다. 그러나 임 사단장은 이를 실종자 수색으로 바꿨다. 임무를 수해복구로 알고 있었던 해병대원들은 갑자기 실종자 수색으로 바뀐 임무에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임무지역인 내성천은 폭우로 물이 불어나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구명조끼같은 안전장구도 없어서 현장 지휘관들은 대원들을 현장에 투입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현장에 나타난 임 사단장은 당장 인원을 투입시키라고 명령했고, 결국 임 사단장의 무리한 수색명령으로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꽃다운 나이의 해병대원 한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러나 임상근 사단장에게 이러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뤄놓은 이 모든 것이 이제 물거품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임 사단장은 진저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고작 병사 한 명이 죽은 것 때문에 30년 넘게 쌓아온 군경력을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이제는 최후의 수단을 준비해야 했다. 임 사단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이 예정돼 있던 2023년 7월 31일 오전. 윤성열 대통령이 주재중인 회의석상에서 윤 대통령의 노호가 터져 나왔다. 

 "아니, 고작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이 대한민국에 사단장을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윤 대통령은 손바닥으로 책상까지 내리 치며 소리쳤다. 뜬금없는 대통령의 격노에 다른 회의 참석자들은 몸 둘 바를 모르고 서로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이 사안 정말로 국방부장관이 승인한 것 맞아요? 지금 당장 국방부장관 연결하세요!" 

 오후에 예정되어 있던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위해 준비 중이던 이중섭 국방부장관의 휴대전화에 용산 대통령실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국방부장관, 나 대통령입니다." 

 "예, 대통령님." 

 "최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보고서를 지금 봤는데 이거 장관이 최종 승인한 걸로 되어있던데 왜 승인했습니까?"

 대통령의 질책어린 질문에 이 장관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 저도 말단 간부들까지 수사대상에 포함시킨 거 보고 좀 그랬는데 수사단장이 하도 강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그게 아니라 임상근 사단장이 왜 수사대상에 포함됐는지 묻는 거예요!"

 "아, 예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자 장관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임 사단장 빼고 다시 수사보고서 올리세요!" 

 이중섭 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잠시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왜 하필 대통령은 임상근 사단장을 명단에서 빼라는 걸까? 이 장관의 생각에 임 사단장은 확실히 혐의가 있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상관의 명령에 따른 죄밖에 없는 임관한 지 얼마 안되는 하급장교들을 구제하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

 '어차피 대통령 말대로 임 사단장을 빼는 김에 하급장교들도 빼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마음을 굳힌 이 장관은 군사보좌관에게 오늘 있을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을 보류하도록 지시했다. 언론에 원래 명단이 공개되면 나중에 보고서 내용을 바꿨을때 의혹을 갖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김계관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임 사단장의 복귀와 수사결과 이첩보류를 지시했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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