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정치 소설 #4

시사

가상 정치 소설 <범인> #4

이미사용중인 0 42,557 07.01 22:24
가상 정치 소설 


<범인(犯人)>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으나 모든 등장인물 및 단체는 작가가 창작한 허구이며 현실의 인물 및 단체와는 그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4화 공동정범(共同正犯) PART 2 


 갑작스럽게 언론 브리핑이 취소되고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수사 보고서의 이첩 보류 지시까지 받았던 박정운 대령은 뭔가 단단히 잘 못 되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이 이첩 보류 지시를 거절하자 몇 번이나 다시 전화를 걸어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를 종용했고 그 과정에서 박 대령은 관리관에게 "이것은 수사외압이 아니냐?"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 

 박 대령은 누군가가 강력하게 수사에 개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일련의 사건들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 누군가가 수사에 개입해서 수사의 방향이 틀어지기 전에 서둘러 수사 보고서를 경북경찰청에 이첩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누가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계관 사령관을 찾아갔다. 

 사령관실에서 김 사령관을 대면한 박 대령은 김 사령관의 얼굴에서 사령관이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음을 느꼈다. 김 사령관은 말없이 박 대령에게 자신의 휴대전화에 찍힌 문자를 보여주었다. 국방부차관이 보낸 '사단장은 빼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어차피 나중에 다 밝혀집니다. 이러면 해병대 전체가 욕 먹습니다. 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박 대령은 강경하게 말했다.

 "국방부장관의 지시라잖아. 우리가 별 수 있냐? 까라면 까야지.." 

 "장관님은 이미 결재까지 끝내 놓으시고 왜 갑자기 이러시는 겁니까?" 

 박 대령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장관에게 모두 보고 했고, 장관도 OK 사인을 했지 않은가? 갑자기 자신의 결정을 뒤집을 만큼 변덕스러운 사람이 일국의 국방부장관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은 VIP가 수사내용을 보고받고 격노를 했다나봐. 군 관련해서 이렇게 화를 낸 적은 처음이었대. 그래서 국방부장관한테까지 전화해서 뭐라 한 모양이야." 

 김 사령관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박 대령은 VIP라는 말에 확인하듯 되물었다.

 "VIP요? 대통령님 말씀이십니까?"

 김 사령관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하고 있음을 알자 모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모든 퍼즐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박 대령은 수사 보고서를 바꿀 마음이 없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이렇게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한 직권남용이다. 박 대령은 자신의 싸움이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싸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최 상병과 그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과 해병대의 명예가 떳떳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박 대령은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을 다짐했다.

 수사단 사무실로 돌아온 박정운 대령은 수사단 부사관에게 서둘러 수사 보고서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할 것을 지시했다. 윗선에서 이첩 보류 지시가 내려온 것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만약에 이 일로 문책을 받더라도 부하들은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해병대 수사단에서 경북경찰청으로 사건보고서가 이첩되고 있던 시간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던 이중섭 국방부장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우즈베키스탄은 아직 이른 아침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누가 이렇게 예의없이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하나 싶었지만 급한 용건일 수도 있으니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 대통령입니다. 국방부장관은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보고서에 사단장 빼라는데 왜 안 뺐어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분명히 빼라고 지시했습니다만.." 

 "그러면 수사단에서 장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장관의 권위가 이거밖에 안돼요?"

 대통령의 지청구는 꽤 오랬동안 계속 되었다. 통화가 종료된 뒤 이 장관이 통화내역을 확인하니 4분이 넘는 통화시간이 찍혀있었다. 이 장관은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국방부 직원들을 통해 상황을 보고 받은뒤 이 장관은 서둘러 김계관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령관, 나 국방부장관입니다. 내가 분명히 수사 보고서 이첩 보류하고 혐의자 명단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했는데 지금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제가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아 아마 수사단에서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장관의 말이 우스워요? 당장 수사단장 보직해임하고 이첩 중단시키세요!" 

 이중섭 국방부장관의 전화를 받은 김계관 해병대 사령관은 박정운 수사단장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박정운 대령이 김 사령관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김 사령관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시간 부로 수사단장 박정운 대령을 보직해임한다."

 박 대령은 이미 이를 예상한 듯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힘들어질거야. 마음 단단히 먹도록 해라."

 "모든 걸 각오하고 벌인 일입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박 대령의 대답에 김 사령관은 일을 돌이킬 수 없음을 느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지금이라도 이첩을 중단할 수는 없나?" 

 "이미 이첩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중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 알았다. 이만 가보도록 해라." 


 좀 전에 저장해놓은 대통령의 개인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자 이중섭 국방부장관은 가슴을 졸이며 전화를 받았다. 이미 모든 출장일정은 취소해 놓은 뒤였다. 앞으로는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일 작정이었다.  

 "수사 보고서 이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이미 이첩이 거의 진행된 상황이라 중단은 어렵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대통령의 질문에 이 장관은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그럼 지금 잘못된 수사 보고서가 그대로 경찰청으로 넘어 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다시 시작된 대통령의 질책에 이 장관은 대답했다.

 "저희 법무관리관의 의견에 따르면, 아직 경찰청에서 수사 이첩을 정식으로 접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고서를 다시 회수할 수 있답니다." 

 "그러면 수사 이첩을 진행한 수사단장에게는 어떤 처분이 내려졌습니까?" 

 대통령의 질문은 수사단장에게 넘어갔다.

 "수사단장은 현재 보직해임되었습니다." 

 "겨우 보직해임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이건 군 명령체계를 무시한 항명입니다! 군사반란과 다를 게 없어요!" 

 "그러면 항명죄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장관은 서둘러 대답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대답은 더 가혹했다.  

 "아뇨, 항명죄는 너무 약합니다. 수사단장은 항명수괴죄로 기소하고 수사단 전체는 그에 따른 공동정범으로 기소하세요. 군 검찰에서 바로 수사기록 회수하고 기소하도록 하세요."

 군 형법 상 항명수괴죄는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중범죄이다. 박정운 대령에게 항명수괴죄라는 엄청난 혐의가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박 대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휘하 부하들까지 공동정범이라는 이유로 죄인이 되고 말았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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