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국내 정치권에서 화제를 모은 것이 어언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기서 레이코프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것은 은유를 바라보는 태도이다. 이제까지 '은유'는 우리가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수단,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보조 도구 정도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레이코프는 '은유'가 본질적인 것이고,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은유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은유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인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레이코프의 주장, 은유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은유 그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된다라는 주장은 이런 것이다. 스포츠, 가령 축구의 예를 들어보자. 축구와 전쟁은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두 팀이 서로 나뉘어 승패를 겨루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구를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 이 은유 체계가 성립되면,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모든 영역에서 축구를 전쟁과 빗대어 이해하기 시작한다. 언론은 승전, 패전, 전략, 전술 같은 전쟁 용어로 축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선수들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룰은 경시된다. 전쟁이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일단 이겨야 한다. 지면 모든 것이 끝이니까. 그래서 우리 팀의 규칙 위반도 '투혼'이라는 이름으로 관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결과로 정말 전쟁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1969년 7월 14일부터 7월 18일까지 벌어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축구 전쟁).
레이코프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은유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인식 체계에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라는 점이다. 인간은 한 번 생성된 은유 체계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한다라는 것이 레이코프의 결론이다.
인간의 인식이 그의 머릿속에 장착된 은유체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레이코프는, 그렇다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대체 어떤 상이한 은유체계를 장착하고 있기에, 모든 사안에서 비타협적으로 대립하는가를 연구했고, 그 결과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밝힌 것이다.
촘스키는 볼테르, 칸트 등의 철학자들에서 시작된 계몽주의 이상을 마음에 지닌 사람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계몽주의 이념에 따라, 모든 인간들에게 진리를 알려주면 그들이 진리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낙관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에서 어떤 비인간적인 행동을 벌이고 있는지 거의 반 세기 넘게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학자적 양심과 정합성을 바탕으로 고발 문건을 발표해도 상대적으로 소수에게만 영향력이 있을 뿐, 다수는 그의 고발에 무관심하다.
최근에 '진화 심리학'이 유행하는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인간이 대단히 합리적인 존재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물들, 특히 유인원의 행동 양태와 별반 차이나지 않는다는 점을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레이코프는 인간은 그가 보유한 잡다한 지식이 그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은유 체계가 행동을 규정한다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반대 의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이성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는 거의 헛수고로 끝난다고 주장했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