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BI ; 극우 개신교의 탄생과 번영”
전광훈이 최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부산 세계로 교회의 손형보 목사의 연설을 유튜브로 보고 입이 안 다물어졌다.
“이재명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며 예배를 이끄는 모습이,
딱 광신도와 사이비 지도자 같았다.
요즘 극우 집회를 이끄는 양대 축이, 전광훈과 손현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둘은 묘한 대립관계에 있다고 한다.
‘누가 누가 더 지랄 맞을까?’를 경쟁하는 꼴이다.
왜 이런 극단적 극우 개신교가 탄생했을까?
이들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일제강점기가 나온다.
19세기 말 미국 선교사들이 서북지방에 도착하면서 한반도 개신교가 시작된다.
(1832년 독일 등의 선교 활동이 있었으나 본격적 선교 기준)
초기엔 민족주의와 결합해 3·1운동에도 다수 기독교인이 참여했다.
하지만 일본의 탄압에 일부 교회들이 무릎 꿇으면서
극우적 성향을 드러내는 교인들이 생겨난다.
진짜 극우 개신교의 씨앗은 해방 이후에 뿌리 내린다.
소련 군정 시절 기독교 박해를 피해 남한으로 이주한 월남 교인들은
반공주의와 친미 논리에 기반한 새로운 종교 정체성을 형성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서북청년단’ 등이 이때 생겨난다.
극우 개신교가 시작된 것이다.
1960·70년대 군사정권과의 유착, 경제 고도성장 속 대형 교회의 조직화,
베이비붐 세대의 유입은 한국 극우 개신교의 정치·사회적 입지를 견고하게 했다.
1980년대 이후 강남 중심 대형 교회들이 보수 엘리트 네트워크를 확산시켰으며,
전광훈 목사 주도의 사랑제일교회, 김진홍 목사가 이끄는 두레교회,
김삼환 목사의 명성교회, 한경직 목사 관련 영락교회 등은
반공, 반이슬람, 반동성애 등 배타적 이념을 선포하며 사회 갈등을 부추겼다.
1990년대 이후, 경제적 불안정, 자본주의 양극화, 사회적 소외는
하층계급이 극우 교회에 포섭되는 도구로 작용한다.
극우 개신교는 단순화된 세계관과 ‘역전 담론’ 등을 통해
소외계층에게 열등감 해소와 정체성 획득을 약속한다.
여기에 번영신학을 도구 삼아 경제적 성공을 신의 축복으로 해석한다.
없는 사람들은 부자 된다니 좋고, 있는 사람들은 더 부자 된다니 좋은 것이다.
2010년대 이후, 전광훈, 손현보 등 대표 목사들은 정치 집회, 과격 발언,
음모론 유포를 통해 신도들의 열렬한 동조와 정치 참여를 유도하며,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극단적 집회 주도로 보수 정당 및 기득권과 결탁해,
재정적 이득까지 얻어내는 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에서 생겨난 소외 계층에게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심리적 위안을 제공한다.
그리고 여기에, 실질적 경제 혜택과 사회봉사 활동을 결합한다.
이러한 방식은 신앙을 정치·경제적 도구로 전환한다.
동시에 목사는 그들에게 위안도 주고, 일도 주고, 돈도 주는
제2의 신적 존재가 된다.
이제 극우 개신교는 종교적 열망을 넘고, 재정적 이익 창출도 넘고,
권력 획득을 통한 영구적 ‘극우 왕국’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젠 종교가 종교가 아닌 것이다.
극우 개신교를 말릴 수 없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끊임없이 그들에게 공급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신교 자성의 노력이 너무 소극적인 것도 이유다.
일부 정치인들까지 극우 개신교에 열망한다.
거기엔 맹목적으로 목사를 따르는 ‘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집회에 머리를 조아리는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보고 있으면,
자본주의 위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운 지 알 수 있다.
극우 개신교를 멈출 방법을 굳이 찾으면,
일단 전광훈, 손현보와 같은 극단적인 인물들은 법으로 엄히 다스리고,
올곧은 종단들과 함께 종교의 자정능력을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난 불가능 할 것 같다.
피맛을본좀비떼같이, 그들은이미돈의맛과권력의맛을봤기때문이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