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들이 혁명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끝은 나치다

시사

극우들이 혁명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끝은 나치다

페가수우스 0 51,919 01.19 05:09
보수혁명(독일어: Konservative Revolution 콘제르파티페 레볼루티온[*])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나타난 독일의 국민보수주의 운동이다.

보수혁명론자들은 독일이 어떤 제도를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통일되지 못한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학자 로저 우즈는 이런 난립상을 “보수 딜레마”라고 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혁명론자들은 빌헬르미안 기독교 보수주의, 평등주의, 자유주의, 의회민주주의를 동시에 반대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보수혁명론자들은 근대 세계의 합리주의와 과학주의로 인한 “문화적 절망”(프리츠 슈테른의 표현)에 빠져 있었고, 니체의 반기독교 윤리 및 불평등론, 독일 낭만주의의 반근대성과 반합리주의, 민족운동의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사회비전, 프로이센적인 군국주의-권위주의 전통 등의 19세기적 요소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최전선에서 자신들이 몸소 경험한 비합리적 폭력과 동지애(내지 전우애) 등으로부터 대안을 찾았다.

보수혁명론자들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나치즘의 여러 부분을 지지하면서도 엘리트주의적 시각 등 차이도 보여 이중적인 태도를 유지했고, 그래서 학자들은 보수혁명운동을 독일의 “전(前)파시즘” 또는 “비(非)나치 파시즘”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실제 보수혁명과 나치즘은 19세기 반계몽주의를 공통된 뿌리로 공유하지만, 뚜렷하게 이질적인 요소들도 있다.[1] 예를 들어 독일 민족주의(푈키슈)는 보수혁명을 구성하는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보수혁명론자들이 반드시 인종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2] 보수혁명론은 반민주주의-유기체주의 이론을 사회에 만연시킴으로써 나치가 권력을 잡는 데 기여했을 수 있고,[3][4] 나치가 권력을 잡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지만,[5] 나치가 권력을 잡은 1933년 이후 보수혁명론은 다른 정치 이념들과 함께 탄압당하게 되었다.[6] 카를 슈미트를 비롯한 일부 예외를 제외한 다수의 보수혁명론자들은 나치의 반유대주의, 전체주의를 거부했다.[7][4]

보수혁명론은 1960년대-70년대 이후의 유럽 신우파, 특히 프랑스의 누벨 드루아트와 독일의 노이에 레흐테에 큰 영향을 미쳤다.[8][9][10] 그리고 이런 신우파 운동을 거쳐 현대 유럽의 정체성주의로까지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11][12]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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