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신교는 어떻게 극우 온상이 되었나 - 극우와 개신교의 만남

시사

칼럼) 개신교는 어떻게 극우 온상이 되었나 - 극우와 개신교의 만남

옆집미남 0 30,005 04.25 23:18

태극기 시위대의 정체...개신교는 어떻게 극우 온상이 되었나

17456293803274.jpg

(전략)

극우와 개신교의 만남

먼저 열패감에 휩싸인 개신교 성직자들에 주목하자. 

그들 중 일부는 교단정치 혹은 교회연합정치에 적극 가담했다. 

교회의 빌드업을 추구하는 대신 

교회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집착하겠다는 것이다. 

21세기 첫 10년대에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나 

기독교정당 운동이 힘을 발휘했던 것은 

성직자들 다수가 극우 전선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이동C의 결과인 아스팔트 우파는 

전광훈 중심의 정치종교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원된 대중이다. 

한편 극우 성향의 중산층 신자 다수도 전광훈 현상의 주요 대중이다. 

그들은 교회에 기부했던 헌금의 상당 부분을 전광훈에게 보냈다. 

1년에 1000억 원이나 된다는 이른바 '애국헌금'의 상당 부분이 

바로 그들의 헌금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기부를 한 신자들 몇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

들은 자신의 교회가 극우 전선에 나서기를 망설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데 자신의 목사가 부재한 그곳에 전광훈이 있었던 것이다.

이동B의 언더클래스 청년층 다수는 신천지로 이동했다. 

이 종단의 일부 소그룹의 극우나 

보수 성향의 정치적 행보가 포착되긴 했는데, 

종단 차원의 정치행위는 알려진 바 없다. 

어쩌면 공적 영역으로부터 안전공간을 찾으려는 

신천지 신자들의 '은둔의 종교성' 때문일 수도 있고, 

'비 정치적 종말신앙'의 전통이 강고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동E에서 남성 청(소)년의 일부는 극우성향을 보였다. 

'일베'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한 스펙을 갖춘 이들이 꽤 많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이, 그것으로 인한 좌절감이 

그들을 증오하는 정치 주체로 호명하는 데 

유효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전면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그들이 접속하고 싶은 주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온라인 극우 청(소)년들이 광장으로 나오기 위해 

전광훈 혹은 손현보와 접속했다. 

하지만 그 접속은 미국에서 트럼프와 접속했던 

대안우파의 다수 유저들이 그랬던 것처럼 임시적이다. 

즉 그들은 아직 최선의 대안을 찾지 못했다.

한편 대중이 좌절감을 증오로 전환시키도록 자극하는 존재가 있다. 

정치학에선 '포퓰리스트', 종교학에서는 

'(극우) 예언자', 그리고 현대 실천이론에서는 

'촉진자'(facilitator)라는 용어에 해당하는 존재들이다. 

현재 한국의 극우가 개신교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런 존재로 전광훈과 손현보가 주목을 끈다.

 

전광훈은 개신교의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출신 지도자다. 

해서 그는 전통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 

교리도, 직제도, 교회도 얼마든지 해체하거나 

재활용하는 것이 그에겐 너무나 쉽다. 

하여 끊임없는 이단 시비가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그는 

근대 개신교 바깥의 탈 근대적 혹은 전 근대적 지도자로 인식되었다.

전 근대적인 거리의 전도자들에게 그는 친숙한 존재일 수 있었다. 

또 탈 근대적인 온라인 극우에게도 

상대적으로 이질감이 적게 여겨질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제도 해체적 요소는 그를 다양하게 해독되도록 했다. 

하지만 개신교 지도자들은 대체로 그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손현보는 전형적인 인사이더 지도자다. 

해서 그가 극우 대열의 전면에 나서자 

많은 개신교 극우 인사들이 지지를 표했다. 

전광훈과는 엮일 수 없어도 손현보이기에 가능했다.

그가 극우의 전사로 부상한 것은 

미국 발 극우적 신사도운동(new apostolic movement)과 엮이면서부터다. 

이 분파는 개신교 주류 사이에서 이단시되곤 한다. 

그 운동이 제도적 직제를 해체하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실제로 전광훈이 한기총의 대표회장이던 때에 

신사도운동 계보의 교회를 가입시키자 

한기총 내에서 전광훈을 축출하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한데 손현보에겐 그 관계가 그를 축출하려는 여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인사이더였기 때문이겠고, 

그와 엮인 신사도운동계 극우파 인사들이 

트럼프의 부활을 주도한 이들이었다는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관계는 그에게 약점이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어쩌면 그는 이미 양자택일의 기로에 있는지 모른다. 

신사도운동이냐 교계 지도자들이냐를 두고 말이다. 

전자는 극우노선을 강화하는 것으로 표상될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극우색이 옅어지고 

강성우파 성격을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의 최근 근황을 보면 후자의 조짐이 엿보인다.

반면 전광훈은 돌아갈 곳이 없다. 그에겐 극우의 길밖에 없다. 

우려되는 것은 테러리즘이다. 

언더클래스나 온라인 극우 청년층이 

오프라인에서 전광훈과 연결된다면 

그들의 일부는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극우가 현재의 정치의 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테러리즘화할 우려는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해서 극우는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글쓴이 : 김진호 제3시대연구소 이사

[출처 : 오유-시사]

Comments

Category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현재 접속자 197(1) 명
  • 오늘 방문자 1,209 명
  • 어제 방문자 2,208 명
  • 최대 방문자 6,008 명
  • 전체 방문자 565,978 명
  • 전체 게시물 87,695 개
  • 전체 댓글수 0 개
  • 전체 회원수 60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