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한국문제가 논의되고 카이로선언에 한국조항이 들어가게 된 일련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중국 정부와 장개석은 카이로회담을 준비하면서 카이로선언에 포함된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는 항목을 주요한 전시 정치의제로 미국에 제시할 결심이었다. 1943년 11월 23일 루즈벨트∙장개석의 만찬회동에서 중국은 ‘한국의 자유 독립’ 조항을 강조했으며, 미국은 그것을 중국의 야심으로 판단했지만 결국 카이로선언에 삽입했다. 미국은 1943년 11월 24일 해리 홉킨스가 카이로선언 초안을 작성했고, 여기에 ‘가능한 가장 빠른 시기에’ ‘한국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조항이 들어갔다. 같은 날 루즈벨트대통령은 앞부분을 ‘적절한 시기에’로 변경했다. 중국측은 미국초안에 찬성했고, 영국의 캐도건외무차관은 카이로선언에 한국조항 삽입을 반대했다. 11월 26일 처칠수상은 영국의 수정초안을 제시했고, 여기서 한국조항은 가급적 모호하고 불명확한 용어로 수정되었다. 11월 26일 영국의 수정초안에 기초해 한국조항이 포함된 카이로선언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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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일본은 2차대전 패전으로 그들이 점령한 나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카이로 선언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합니다...
그때 카이로선언에 한국은 포함이 안될뻔함...이유는 한국은 오랜기간 일본에 지배를 받아왔고 그런 한국은 일본땅이라고 생각들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대 위처럼 중국이 한국도 포함해줄것을 요구했음...이것은 중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꾸준히 활동한 덕분이고 중국도 그런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함해줄것을 요구했던 겁니다...
어쩌면 이런 과정이 없었으면 지금도 우린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을지도 모를일임...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