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용산 대통령실의 ‘일개 비서관’ 인사에 두 번 놀랐다. 시민사회수석실 비서관에 박근혜 청와대 ‘문고리 권력’이었던 정호성(당시 부속실 비서관)이 기용된 기괴한 모양에 경악했고, 그가 맡은 업무가 국민 공감과 국민 소통이라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검사 윤석열’이 구속 수사해 엄벌했던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을, ‘대통령 윤석열’이 다시 대통령실 참모로 불러들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체성마저 의심케 하는 이 “지독한 자기부정”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그러니 ‘탄핵 과정 예습용’이란 조롱이 반향을 얻는 것이다.
시민사회수석실 비서관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자리다. ‘국정농단 방조자’(법원 판결문)의 어떤 능력이 그에 적합하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통령실에선 윤 대통령이 정씨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했다는 말이 나온다. 박근혜 정권을 망친 그 맹목적 충성심은, 여론 청취 담당 비서관의 덕목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보수’ 달래기 차원이라면 이해는 된다.
너무도 퇴행적인 ‘정호성 비서관’ 인사는 심판해도 심판당한 줄 모르는 대통령의 ‘역주행’이 가속될 것임을 알리는 예령 같다.
4·10 총선 참패 직후 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며 “저와 정부부터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간 걸어온 길은 쇄신, 변화와는 너무 멀다. 쇄신 의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조치가 인사다. 국정의 중심인 대통령실은 총선에서 떨어졌거나 공천을 받지 못한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총선 출마를 위해 퇴임했던 참모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이만큼 ‘국정 쇄신’ 전도를 감감하게 하는 시그널도 없을 터이다. 국정 쇄신과 변화를 상징하는 국무총리 교체도 하염없이 늘어지고 있다.
총선 후의 변화라고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과 기자회견이다. 2년 내내 거부하던 영수회담을 하고, 21개월 만에 기자회견을 했지만 본질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영수회담이 협치의 최고 통로로 자리를 잡으려면 지속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4월29일 영수회담은 서로의 필요와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이루어진 일회성 이벤트에 가까웠다. 이재명 대표의 연금개혁 관련 영수회담 제안을 대통령실이 단번에 거절했다. 애초 협치의 진정성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돌이켜보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국정 기조는 옳았다’며 사과를 거부했을 때 예견됐던 일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 기조를 바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나마 “더욱 소통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소통 강화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민심 청취’를 내세워 민정수석실을 부활했지만, 수석(검사 출신 김주현)과 비서관(측근 이원모) 인선을 보면 여론 청취보다는 대통령실 방어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두어져 있다. 국민 소통을 담당하는 시민사회수석실 3비서관에는 국정농단 사건의 주역이 발탁됐다.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거부, ‘김건희 사건’ 수사팀을 와해시킨 검찰 인사 등이 가리키는 바가 있다. 윤 대통령은 국정 기조 전환은커녕 아예 민심에 맞서기로 작정한 듯싶다. 그간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김건희 여사 의혹에 대해 수사를 해보지도 않고 권력의 힘으로 덮으려는 행태가 민심을 격동시켰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지시로 ‘김 여사 명품백 사건’ 수사가 본격화되자 검찰 인사권을 동원해 수사 지휘부를 통째로 갈아치웠다. 대놓고 “여사님을 건드리지 말라”고 방탄 인사를 감행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역대 어느 대통령도 본인, 가족과 관련된 특검이나 검찰 수사를 막무가내로 막은 적이 없다. ‘가족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사팀을 흔들지도 않았다. 윤 대통령처럼 ‘가족 안위’를 위해 국가 권력을 사용(私用)할 만큼 염치없는, 무도한 대통령은 없었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