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직후 계엄군 병사 하나가 지나가는 젊은 여성을 느닷없이 백태클해 자빠뜨리고는

"내가 계엄군이다!" 라고 외치는 걸 목격했다는 전우용 선생님 에피소드를 듣고 만감이 교차했읍니다.. 

단순히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합법적으로 소총을 들고 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계엄군이기에 일개 시민 따위, 혹은 경찰이 온다 해도 

감히 내게 대들거나 항의할 수 없을 거라는 그 무시무시한 권력뽕이 일개 병사를 도취시켰다는,

치기어린 20대 초반 병사와 정신 세계의 수준에서 하등 다를 바 없는

윤썩열과 그 개들의 권력뽕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걸까 상상하게 되면서 몸서리치게 되는 그런 에피소드였읍니다. 

1995년 바야흐로 전두환 노태우 학살자 처벌이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을 당시 저도 비슷한 일을 겪었읍니다. 

대학 언론 기자였던 저는 동료 1명과 함께 장충단 공원에서 열리던 대규모 집회 취재에 파견됐고,

3호선 전철을 타고 가다 동대입구역에서 내렸죠.

전철 문이 열리는 순간 낌새가 이상한 걸 바로 눈치 챘습니다. 

최루탄 냄새가 알싸하고 매캐하게 콧구멍으로 스며들었고, 그 기나긴 전철 플랫폼에 개미 한마리 찾아볼 수가 없었읍니다... 

불길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는 찰나, 계단 쪽에서 우두두두두 하는 군홧발 소리가 울리더니만

방독면과 곤봉, 방패로 무장한 일개 소대쯤 돼 보이는 전경 무리가 순식간에 우리를 포위하고 섰습니다. 

소대장쯤 돼 보이는 놈이 무서운 말투로 질문을 던지더군요. 

"무슨 일로 왔습니까?"

"아, 저희는 학생 기자인데 취재하러 왔습니다."

"기자증 있습니까?"

"아, 네, 잠깐만.." 

하고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갑자기 곤봉이 날아와 제 머리를 강타했읍니다.. 

그렇게 쓰려져서 밟히고 얻어맞고 채이고 하는 와중에 저는 말 그대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죠. 

할 수 있는 거라곤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등을 노출하는 것뿐이었읍니다.. 

뭐 사후 기억이 왜곡돼서인진 몰라도 사실 별로 아프지는 않더군요... 

아니 당장의 물리적 고통보다 죽음의 공포가 더 커서 아드레날린이 엄청나게 분비됐던 건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렇게 한참을 얻어맞고 엉망이 된 후에야 지하철 플랫폼에서 질질 끌려나왔는데,

양쪽에서 제 팔을 움켜잡고 개찰구를 지나 장충단공원 쪽 출구로 가는 기나긴 통로로 끌고 가더군요. 

바로 그때였읍니다.. 

저 앞쪽에서, 한 30~40미터쯤 앞쪽에서, 누군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읍니다.. 

안경이 어디론가 사라져서 잘 식별할 순 없었지만 아군이 아닌 건 확실했읍니다.. 

지금까지 나를 패던 X들과 똑같은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전경으로 보였거든요. 

저 XX는 무섭게 왜 뛰어오는거야... 하는 찰나에 그X은 순식간에 저에게까지 접근해서는,

갑자기 공중에 붕 뜨더니 TV에서나 보던 이단옆차기로 제 가슴팍을 정확히 가격하는 겁니다.. 

WWF 헐크 호건과 울티밋 워리어가 시전하던 그 멋진 환상의 이단옆차기를 내가 군홧발에 맞을 줄이야...

전경 두 놈이 제 양 팔을 붙잡고 있었지만 불의의 일격에 저는 그대로 나가떨어져서 대자로 뻗었읍니다.. 

아니, 우리 일면식도 없고 통성명도 안한 사이인데,

나라는 개체에 관해서라면 저 아프리카 초원의 어느 잡초만큼도 관심이 없을 텐데,

그렇게 안드로메다만큼 머나먼 관계면서 갑자기 몇십 미터를 뛰어와 이단옆차기를 시전한 그놈의 심사는 대체 뭐였을까... 

아무리 그래도 부하 수십 명이 지켜보는 중에 간부가 그런 꼴을 보이진 않았을 테고,

시위 진압하다 얻어맞았거나 악에 받친 말년 병장(전경이니 수경쯤?)이

자신들이 현장을 완전 장악했다는 자신감과 쫄따구들 앞에서 운동능력을 뽐내보자는 우쭐함을 실어

WWF를 보며 동경하던 헐크 호건의 이단 옆차기를 본능적으로 날렸던 거였을까,,, 하고 짐작해볼 뿐입니다.. 

엊그제 있었던 일 같은데 벌써 30년 가까이 된 얘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