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스포 리뷰] 왜 주인공은 18이 아니라 17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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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스포 리뷰] 왜 주인공은 18이 아니라 17인가?

어스름달 0 28,446 03.10 18:11
미키 18을 악역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그를 미키의 가장 영웅적인 자아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17이 저녁 식사에 초대받고 당한 일을 듣고 17대신 불같이 화를 내줍니다.
그가 이기적인 사이코패스라면 그같은 공감능력을 보여주진 않았을 겁니다.
화를 내주는데 그치지 않고 18은 금방 잡혀 사형당할 게 뻔한데도 독재자 암살을 시도합니다.
마지막에는 실제로 자신을 희생해 악인을 처단했고,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켰으며 크리퍼로부터 인류를 지켜냈습니다. (그 당시엔 블러핑인 줄 몰랐으니)

저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티모가 감옥에 왔을 때 18이 아닌 17을 죽이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17은 그 어떤 불합리한 강압을 겪어도 아무 저항없이 순응했기 때문입니다.
티모는 18을 노렸다가 만에 하나라도 반격을 당할 리스크를 배제하려 한 거죠.
맹수의 왕 호랑이조차 토끼를 사냥하지 늑대를 쫓진 않습니다. 학창시절 일진이라고 깝치는 녀석들도 돌이켜보면 10대 때리고 1대 맞아서 이기는 싸움보다는
전혀 대들지 않고 순순히 돈 뺏기고 괴롭힘 당하는 먹잇감을 물색했습니다.

'저항은 침묵이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저의 평소 지론입니다.
그래서 국정 교과서 때도, 박근혜의 국정농단 때도, 얼마 전 12월 3일에도 서울까지 달려갔었죠.
그걸로 당장 뭔가 하진 못해도
적어도 눈치는 보게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바탕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영웅 18이 아닌 찌질하고 답답하기만 한 17인 이유를 깨닫습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웅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영웅이 되는 쪽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용기내지 못하는 수많은 17들에게
이 영화의 설정은 질책이 아니라 격려를 던집니다.
18과 17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7이 언제 18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 모두는 영웅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마지막 장면에서 17은 18을 상기시키며 망상속의 유혹에 저항합니다.
바로 독재자인 마샬이 다시 돌아오기를 은연 중 바라는 유혹.
(박정희나 전두환을 찬양하는 2찍들의 심리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소스에 대한 유혹입니다.

소스가 상징하는 바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사회 지배층만이 누리는 허영적인 특권.
이를 위해선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크리퍼의 꼬리를 가는 장면을 통해 명확하게 다시 상기시켜 주죠.
첨에는 소스 하나 때문에 번거로운 기계장치를 만들고 미키들을 내보내는 전개가 이해가 안 됐는데,
곱씹을수록 개연성이 있는 장면입니다.
이기적이고 부패한 상류층의 가장 강력한 행동동기가 뭘까요?
바로 소스와 같은 특권입니다.
타인을 얼마든지 희생시키더라도 그 끝에 지들이 누릴 수 있는 그것 말입니다.

미키는 망상 속에서 그 소스를 맛보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사회 계층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그가 이제 지배층에 올라서자마자 소스를 즐기는 부류가 될 건지 시험에 빠진 겁니다.
그리고 그는 18을 떠올리며 이 유혹을 뿌리칩니다.

이 영화는 불의에 저항하지 못하는 소심한 미키 17들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18이 아닌 17인 겁니다.
굳이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18같은 영웅이 되지 않더라도
유혹을 떨쳐내고 바른 방향을 지향하는 것 정도만으로도 괜찮습니다.
이 또한 크나큰 성장이자 영웅적 행동입니다.
이렇게 내적인 성장을 이룬 미키는 더 이상 찌질하고 소심한 17이 아닙니다.
미키 17이 미키 반즈로 뒤집히면서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실망하셨다는 분들도 많으시지만
저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일단 예술영화라 조금 지루할 걸 감안하고 갔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오히려 기생충 때는 뭐가 대단한지 모르고 봤었는데
이번 미키 17은 그 의도와 상징하는 바가 더 명확해서 더 감탄했고 여운도 더 오래 남았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이 나오고 있으니 이 영화 괜찮다고 무조건적인 추천은 드리지 않습니다.
다만 이 영화에 실망하셨던 분이, 혹은 뭐가 뭔지 몰라 정리가 안 되셨던 분들이
이 해석을 보시고 공감하는 바를 찾아내셨다면 그걸로 저는 보람을 느낄 것 같습니다.

[출처 : 오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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