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아서 클라크에게 극찬을 받았던 소설 <듄>. 영화 평점을 보면 극과 극으로 갈린다. 재미있는 점은, 혹평을 하는 쪽이든 호평을 하는 쪽이든 반대 평을 하는 쪽을 폄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렇게 극단적으로 영화평이 갈리는 이유가 있다. 일단, 내 안에서도 '영화는 아주 좋았지만...'으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이게 좋은 영화인지 안 좋은 영화인지 꼬집어 말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젊은 천재 감독 3인방은 '크리스토퍼 놀란', '대런 아로노프스키', '드니 빌뇌브'로, 일단 그 이름이 들어가면 팬심+그 팬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완성도로 돈을 쓰기 아깝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주는 감독들이다. 게다가 영화음악은 내가 애정해 마지않아 콘서트까지 간 한스 짐머가 아닌가?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영화적인 영상미>, <소설의 상상력을 화면에 구현해낸 능력>, <뛰어난 미장센>, <무게감 있는 연출>,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운드 트랙> 등으로,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나 가오갤처럼 가벼운 느낌이 아니라, 좀 더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등장인물들은 굉장히 한정적이지만. 액션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거대한 자연 안에 인류가 생존해 있는 방식을 담아내려 애쓴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SF라고 하면 마블 스튜디오 영화를 먼저 생각하는 관객에게는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마블은 SF의 탈을 쓴 액션 영화고, 듄은 SF의 탈을 쓴 역사 판타지다.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등과 같은 선상에서 보면 조금 더 너그럽게 이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니 빌뇌브는 <컨택트 (Arrival)> 이후에 SF로 자신의 커리어를 끌고 가고 있는데, 드니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 있는 연출이 SF에 인간의 감정 흐름을 깊이 있게 담아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거기에 짤막한 설명들로 가지들을 쳐내고, 주인공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는 연출로 지루하지 않도록 이야기가 빨리빨리 진행된다. 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판타지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주인공 폴 (티모시 살라메)을 따라가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다. 화면 가득히 펼쳐지는 아름다운 우주와 행성들의 모습은 덤이다. 이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마치 본인들이 진정 예술영화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혹평을 한 사람들을 폄하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단점은 이 영화가 <올드한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이다. 역사 판타지 - 대 서사시 같은 경우에는 시대가 발전한다고 해도 그 문화나 기술발전에 대해 '이제 보니 그거 유치하네'라고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건 과거에 일어난 일이니까.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지만 마치 신화처럼 과거 미들랜드라는 곳에서 정말 있었던 일 같다. 왕좌의 게임도 그렇고. 그러기에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차별이나 문화도, '그건 무지했던 인류 역사에 정말 있었던 일이니까'로 필터가 씌워진다.
하지만 SF는 다르다. 물론 시대가 흘러가며 다시 역사가 반복된다든지, 오래전 문화로 돌아간다던지 하는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 그 자체까지 퇴보해서 상대성이론 이전처럼 돌아가버린 세상이라면 말이다. 듄은 60년대에 처음 나온 소설이고, 거기엔 그 시대상이 듬뿍 담겨있다. '은하 제국'이라는 설정이 당시 SF에 굉장히 유행했는데, 그건 제국주의와 2차 대전, 냉전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여파다. 심지어 마블도 나치를 연상시키는 '하이드라'가 주적인 것을 보면, 서양은 아직도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미디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근 스타워즈나 어벤저스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넣어서, 원작에 남자나 백인인 캐릭터를 여자나 흑인으로 바꾸거나, 서사에 여성을 주도적인 내용으로 바꾸거나 하는 게 있는데 그게 원작 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시 느낌 그대로 나온다면 그 영화들은 완전히 '유치한' 혹은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들게 된다. 현대에 맞게 각색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내가 잘못 이해했나 싶어, 영화 듄의 시대까지 이어지는 듄의 역사를 압축한 내용도 훑어보고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SF로 역사 판타지를 그리고 싶은 작가의 변명'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인간은 항상 전쟁을 해야 하고, 남자와 여자는 차별적이며, 오지에 남은 사람들은 과학보다는 신을 믿고, 구원자는 백인 남성이어야 하며, 또 흑인과 아시안에게 60년대 미국인이 가지던, 제3세계에 대한 클리셰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것이 지금부터 만년이나 더 지난 미래를 그린 영화라기엔 그냥 작가의 시선 자체가 '냉전시대에 갇힌 미국인'처럼 편협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마치 유태인이나 아랍인을 연상시키는 종족에게 백인 남성이 구원자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내용은 그것의 절정이다. 서양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독교를 과학으로 푸는 것에 집착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 이건 60년대 소설이지... 모든 SF의 원류라고 할만한 소설 중 하나지...라는 생각이 들면 아쉬운 한숨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제국시대에나 있던, 군사력을 과시하려 병사를 사열해서 연설하는 장면이나 초과학적인 무기들은 다 어디 쓰고 육탄전을 하고 있다거나, 샌드웜이 그토록 치명적인데 공중에서 채굴하는 장비 정도도 못 만들어 냈는가 하는 것 등이다. SF가 아니라, 작가가 하고 싶은 설정에서 필요한 부분 (행성 간 여행)에서만 SF를 가져다 쓰고, 나머진 상상력 부족이거나 끼워 맞추기로 느껴진다.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선이다. 과학자는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편협한 시선을 버리려 노력한다. 왜냐하면, 과학자는 비판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시선으로, 자기 자신의 이론조차 의심하고 검증하려 애쓴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역사에 인권문제와 평등을 인식시켜왔고 그 점에서 종교와 대립해왔다. 흑인 인권, 여성인권이 낮았던 이유는 종교를 빌미로 탄압해왔기 때문이고, 과학은 그 이유를 하나하나 까발리며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 따라서 과학이 발전한다면 진보적이고 평등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60년대에 나온 드라마 <스타트렉>도 비슷한 은하연방을 다루고 있지만, 듄처럼 '제국'이 아니라 '연방'이라는 데에 주목할 점이 있다. 그리고 당시에도 엄청나게 파격적이었던, 흑인 통신장교 역할 배우와 백인 선장의 러브라인은 SF가 진보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제작진의 마인드가 잘 나타난 거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둘의 키스신은 미국 TV 역사상 최초의 백인-흑인 키스신이었다.
내가 영화를 보고 든 이 생각에, '설정을 몰라서 그렇다' 라거나, '원작을 보지 않아서 그렇다'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거야말로 이영화를 더 낮추는 말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영화 자체로 재미있어야 한다. 반지의 제왕도, 왕좌의 게임도 난 한 글자도 읽지 않았지만 재미있게 봤었다. (왕좌의 게임은 중간까지 보고 작가의 마인드가 짜증 나서 손절했지만.) 부가설명이 필요한 작품은 작품이 아니다. 마치 사고 친 아이를 엄마가 따라다니면서 '원래 우리 애가 이런 애가 아닌데요...'라며 변명해주고 있는 것 같으니, 그런 말은 말아줬으면 좋겠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오로지 관객의 해석에 달려있는 것이다.
나는 듄의 전체 세계엔 관심이 없다. 내가 본 부분이 듄의 아주 일부분일 수도 있고, 단순이 결론을 위한 설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이는 부분으로 관객은 판단한다. 적어도 듄 1편은, 그런 면에서 많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쓰레기 영화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영화적으로 즐길만한 많은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영화를 관람하는 시간 내내 아주 잘 즐길 수 있다. 특히 호흡이 빠르고 정신없는 연출로 마치 뭐가 있는 듯이 포장하는 액션 SF에 지친 관객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볼 수가 있다. 배우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열연도 볼만하고, 화면과 사운드에 압도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다. 스토리가 기-승에 불과해 중간에 끝난 느낌이 들지만, 그게 뭐 대순가.
별점은 1점을 줄 수도, 5점을 줄 수도 있다. 내 별점은 그 둘에 중첩되어 있는 것 같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진, 그 상자 안에는 1점과 5점이 공존한다.
[출처 : 오유-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