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섬노예에 대한 소고.
필명숨김 2011.06.22 22:05:05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이것의 출처가 헌법 제3조라는 사실에 생소함을 느끼는 이는 있을지언정 그 내용까지 낯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행정권력이 미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영토 전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굉장히 순수한 사람일 것이고, 휴전선 이남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정치적 민감성이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전라도 섬지방은 제외시켜야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이는 제목의 의도를 과도하게 해석한 사람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다소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신고전화를 받고 대한민국 경찰이 출동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 법의 보호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당신의 인생이 감사해도 좋을 만큼 밝은 인생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영등포, 청량리. 가리봉동 등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러한 행정권력의 공백영역은, 실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존재한다.
이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눈을 들고 창문 너머를 보라. 지금 당신의 눈길이 닿는 영역 안에 반드시 하나 이상의 '공백'이 존재하고 있다. 오늘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공백 가운데서도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하는 공백에 대해서이다.
나는 해경이었다. 전라남도 서남해안을 관리하는 목포 해양경찰서 소속 전경으로 2년 2개월간 복무했다. 복무 기간의 삼분의 일은 배를 탔고, 삼분의 일은 경찰서 상황실에서 근무했으며, 나머지 삼분의 일은 이번 방송의 무대가 되는 전남 서남해안의 낙도 지역 출장소에 근무했다.
배를 탈 때는 주로 중국어선을 잡았고, 상황실에서는 해양경찰 소속 경비정을 통제했으며, 출장소에 있었을 때는 바다와 관련된 섬의 치안과 섬을 드나드는 선박을 관리하는 업무를 했다. 섬의 이름을 밝히긴 어렵지만 극락도 살인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섬과 배로 한 시간 거리이고 이틀에 한번씩 운항하는 여객선을 5시간 정도 타고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다고만 해 두자.
나는 그 지역 해양경찰서에 있어서, 해안경비대 시절까지 통틀어 유일한 서울대 출신이었고, 내가 아는 범주 하에서 이러한 섬지역 출신 학생들이 실수로라도 서울대 문턱을 밟은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따라서 관악에서 이 것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조금 성급할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없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처음 이 방송이 방영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것과 관련되어 글을 써야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거의 모든 서울대 학우들이 살아온 환경과 관련이 없을 뿐 도서지역의 인권 침해문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동시에 보지도 않은 방송에 대해 운운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이 나간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키보드를 두드리는 까닭은, 이 방송이 아직까지 게시판에 회자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기 때문이고, 더불어 내 기억이 퇴색하기 전에 한번 정도 정리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일단 전라도 섬노예라는 단어에 대하여, 그 센세이셔널한 네이밍 센스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이 문제는 단지 '전라도' '섬' 지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했으면 한다. 실상 이같은 인신매매 사건은 중소형 선단이 정박하는 서해안과 남해안의 모든 항구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 가운데 큰 도시 몇가지만 열거해 봐도, 태안, 군산, 목포, 여수, 통영, 부산 등이 이에 속하는데. 인천이 여기서 빠지는 이유는 북한과 접경해 있기 때문에 해경의 검문검색이 엄해 상대적으로 위법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이들 도시에서 인신매매를 통해 선주에게 구금된 이들은 배에 끌려가 고기를 잡거나, 염전에 팔려가 혹사당하게 된다.
여기서 이번에 전라도 섬노예가 방송을 탈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그들이 그나마 전파가 터지는 곳에 있어서 방송국에 전화를 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이번 방송에 나온 '전라도 섬노예'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왜? 10년 넘게 살아있으니까. 비'전라도 섬노예'들이 십년을 버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에 빠져 죽거나, 폐인이 되서 죽거나 어느 쪽도 7~8년을 넘기기 힘들다.
스스로 몇가지 질문을 세워 보자면.
첫번째로 과연 지역주민들이 이러한 인권침해에 동조하고 있는가?
현재 외국에 있는 관계로 방송을 보지는 못했지만, 캡쳐화면을 보니 섬에 들어가기 전 항구도시에서 섬을 아냐고 물어보니 지역 주민들이 잘 모른다고 하는 화면이 있었다. 단언하건대 이 장면은 단지 고발프로그램의 선정성을 극대시키기 위한 촬영팀의 연출에 불과하다. 전남 서남부에 있는 대부분의 섬이 소속되어 있는 신안군의 경우, 유무인도 통틀어 총 1004개의 섬이 존재한다. 그 와중에 정말 유의할 수준의 인구가 거주하는 유인도는 다 합해도 30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길가는 행인이 제작진이 물어 보는 섬을 인지할 확률은, 관악에서 행인을 붙잡고 서울시 동이름을 들려주고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을 때 대답하는 확률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방송에 나갔던 일반인들은 모두와 같이 행정권력이 미치는 범위에 사는 이들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인권침해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 왜 해경과 관련기관들은 이들을 구출하지 못하는 것인가? 여기에는 세가지 난점이 결합해 있다. 첫번째, 이러한 인권침해사건은 모두 경제적 계약관계에 의해 맺어진 민사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러한 사건들을 모두 처리하기에 해경의 여력이 부족하다. 세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이러한 인권 침해의 대상이 되는 거의 모든 이들이, 무연고자, 심신미약자, 주민등록 말소자들이기 때문이다.
왜 해경이 정의의 사도가 되어 이들을 구출하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들이 표면적으로 '자발적인 노동 계약'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계약의 당사자가 이러한 계약이 무효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기본적으로 민사사건으로 분류되어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경찰관이 이에 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방송에도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주로 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취업소개소의 사전적 경제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선주는 이들에게 식사, 숙박, 음주, 매춘 등을 제공하고 나중에 임금을 산정하여 빚을 갚도록 계약서를 작성한다. 여기서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과연 그럼 선주들이 임금을 진짜로 주는가 하는 부분이다. 진실은, 정신 미약자에게는 거의 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임금 항의를 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지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불된 임금 역시 항구에 닿았을 때 다시금 식사, 숙박, 유흥, 매춘 등으로 금새 동이 나고, 이들은 빚의 수렁 속으로 빠진다. 이 과정에서 노예계약이 성립되어, 조금이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일을 시키고, 노동 능력이 상실된 이들은 더 낮은 단계의 지옥으로 팔려 나간다. 10년동안 붙잡혀서 일한 사람이면 몇년동안 배를 타고 거액의 빚을 진다음에 싼값에 섬으로 팔려가는 경우일 텐데, 이미 섬에 팔려간 시점에서 거액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노예'로 팔려가는 것이다.
아무리 해경이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법권력인 이상 많은 이들이 사법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경찰 권력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특히 해안 도서지방에서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중국 어선단은 한번에 500척 정도 의 어선이 출어한다. 이를 관리하는 우리 해경 경비정은 한번에 단 한척에 지나지 않는다. 상기한 것처럼 전남 서남지방에 1004개의 섬이 있다. 그가운데 파출소, 출장소가 있는 섬은 20곳도 안된다. 내가 섬에서 근무할 때, 태풍이 불자 주변 해역에서 고기를 잡던 어선들이 모두 피항을 왔는데, 해경, 일반경찰 통틀어 7명 근무하는 섬에 1000명이 넘는 선원들이 정박했다. 이날 받은 신고만도 실종신고 4건, 폭행사건 15건, 무전취식는 부지기수였다. 그가운데 실종사건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자면, 두명이 월급만 받고 일하기 싫어서 산으로 도망갔다가 한명만 내려오고 한명은 섬안에서 종적을 감췄으며, 두명은 술먹고 바다에 빠져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두 명다 실족사로 처리되었는데 무연고자라서 시체를 인수하는 이가 없었다. 바다에서는 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왜냐면 아무도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이 할 수 있는 것은 간신히 눈에 보이는 일을 처리하는 것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극단적인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은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이들이라는 사실인데, 일반인들이 이에 대해 실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 즉 피해자들은 범법자인 경우가 많고 그들 중 대부분은 수배중이다. 수배라고 해도 엄청난 범죄가 아니라 예비군 훈련 미참석, 주거불명에 따른 수배인데,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본능적으로 경찰 및 행정권력을 두려워하고 멀리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심신미약자들인데, 이건 원래부터 정신적 결함이 있는 이들도 있지만, 교육을 못받고,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건강을 해치고, 알콜중독에 빠지고 해서 후천적으로 머리 회전이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이들은 착취에 대한 느낌은 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착취를 받았는지 일관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법적인 절차를 진행시킬 수가 없다. 이들 중 다수가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법적으로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가해자들이 아닌 피해자들이 경찰과 접하는 것을 기피하게 하여 이러한 사건들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결정적인 작용을 하곤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 머리속을 차지하는 것은 이러한 섬사람과 일꾼들에 대한 연민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가야하는 섬사람들에게는 세상의 법률과 도덕이 적용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에 외부의 권력이 개입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자신들에게 들어맞는 약육강식의 법칙 속에서 살아간다. 순수성과 야수성을 동시에 가진 이들은 어느날 칼부림을 벌이고도 다음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얼싸안는 괴이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꾼들.
내가 근무하는 섬에는 그러한 노예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조업선박에서 도망친 이들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갈곳이 없기 때문에 해경서를 찾아온 이들은, 범죄기록 때문에 신원이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고, 자신들이 진 빚이 유효함을 알기에 선주를 고발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해경으로서 우리가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편의는 라면을 끓여주고, 청사 한구석에서 잠을 재우고, 여객선 직원에게 편의를 부탁하는 일 뿐이다. 그렇게 다시 자유를 찾은 이들은 육지로 나가지만, 돈도 갈 곳도 없기 때문에, 조금 미적거리다가 원래의 선주를 찾아가 직싸하게 맞고 술한잔 얻어 먹은 다음에 다시 배를 타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악순환은 이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 세계가, 그런 이야기가 바로 당신들의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조기에 고등어에 장어에 오징어에 존재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많은 이들이 이번 섬노예에 대한 고발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놀라움이 유별나게 느껴진다. 지금도 지하철 역에 가면 장애인 앵벌이들이 득실거리고, 서울 어느 지역에서 택시를 타도 5,000원 안에 집창촌에 닿을 수 있는 현실에서, 현대판 '노예'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움을 자아낼만한 것인가? 사람들이 이에 극도로 분노하는 것은 섬노예가 우리 주변에 있는 '앵벌이', '집창촌'을 뛰어넘는 심각한 인권 침해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이 단지 전남의 섬 지역이라는, 내가 속한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기에 양심의 가책없이 맘껏 타자화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인가? 우리가 평소에 잊고 지낼지는 몰라도 노예적 삶을 사는 이들은 항상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 존재해 왔고 한번도 우리 눈밖을 벗어난 적도 없다. 정작 주변에 가까이 존재하는 노예들에는 눈을 감은 채 티브이 화면에 비친 영상에만 분노하는 것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위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분노하라. 바로 지금. 당신 주변부터.
[출처 : 오유-유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