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대 이집트에서 강력한 위세를 떨친 정복 군주라고 하면 소설 람세스로 유명해진 람세스 2세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람세스 2세의 이전에 그보다 더 강력했던 정복 군주가 있었으니 투트모세 3세였습니다.
고고학적인 발굴과 이집트 왕실 연대기의 기록을 종합해 본 결과에 의하면 투트모세 3세는 기원전 1481년에 태어나 기원전 1425년에 56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그 중 집권 기간은 기원전 1479년부터 기원전 1425년부터였습니다.
투트모세 3세는 기원전 1479년부터 기원전 1457년까지 22년 동안 나이가 어려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의 이모인 하트셉수트가 어린 조카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섭정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24세가 되던 해인 기원전 1457년에 본격적인 왕이 된 투트모세 3세는 오랫동안 이모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울분을 풀기 위해서인지, 그녀의 업적이 새겨진 비문들을 전부 회반죽으로 칠해 숨겨버렸습니다.
그리고 투트모세 3세는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 싸웠는데, 그는 20년 동안 16번이나 누비아(수단 북부)에서부터 중동의 시리아에 이르는 지역에 원정을 하러 떠났습니다.
이는 훗날의 람세스 2세보다 더 활발한 대외 원정이었으며, 그래서 이집트를 연구하는 미국의 고고학자 제임스 브레스트는 투트모세 3세를 가리켜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렀습니다.
투트모세 3세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17번의 군사 작전을 통해 누비아에서 유프라테스까지 이르는 지역의 도시 350개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는 조상인 투트모세 1세 이후 최초로 유프라테스 강을 건넌 이집트의 군주였으며, 그의 정복 전쟁으로 인해 이집트는 중동의 판세를 주도하는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투트모세 3세의 눈부신 정복은 군사 기술의 혁명적인 발전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시대로부터 약 200년 전인 기원전 1650년 무렵 팔레스타인의 유목민인 힉소스족은 2마리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와서 이집트에 쳐들어와 정복했는데, 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집트인들은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문물인 말과 전차를 알게 되었고, 이를 터득하여 결국 기원전 1539년 힉소스를 이집트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이집트 군대는 예전보다 훨씬 빨리 이동하여 군사 작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투트모세 3세가 치른 대표적인 전투를 몇 개만 나열하면 우선 므깃도(메기도) 전투를 들 수 있습니다. 기원전 1457년 5월 9일, 시리아의 도시인 카데스(카데시)의 왕이 자신의 군대를 므깃도로 진격시키자 이에 맞서고자 투트모세 3세 역시 군대를 이끌고 므깃도 근처의 작은 도시인 예헴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므깃도는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싸여서 진격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투트모세 3세는 산악 지역을 멀리 도는 북쪽과 남쪽으로 가자고 하는 장군들을 겁쟁이라고 비난하고는 산길을 정면으로 뚫고 진격하였습니다. 이 진격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고 그래서 카데시 군대는 이집트 군대가 산을 정면으로 통과하여 오자 당황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벌어진 므깃도 전투는 훗날 구약성경에서 세상의 운명을 좌우하는 싸움이라고 할 만큼 매우 치열했으나, 결국 이집트 군대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투트모세 3세는 므깃도를 점령함으로써 북부 가나안 전체를 장악했고 시리아 남부의 토호들은 자신의 아들들을 이집트에 인질로 보내야 했습니다.
두 번째로 투트모세 3세가 치른 중요한 전투는 시리아의 페니키아 도시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페니키아 도시들은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를 지배하던 미탄니 왕국의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미탄니 왕국의 상류층은 후리족이었는데, 이들은 인도 계통에 속한 민족으로 아마 용병으로 중동에 왔다가 정착하여 나라를 세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투트모세 3세는 그의 적인 미탄니를 제압하기 위해 우선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시리아의 페니키아 도시들부터 공격하여 밀밭을 불태우고 도시를 약탈하였고 시리아 남부에 이집트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이에 시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투트모세 3세는 군대를 이끌고 다시 쳐들어와 반란군을 진압하였습니다.
그런 이후에 투트모세 3세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시리아 동부의 도시인 알레포와 갈그미스를 통과하였고, 배를 타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넜습니다.
이에 미탄니의 왕은 크게 놀랐는데, 먼 서남쪽에 있던 이집트가 이렇게 빨리 쳐들어오리라고 예상치 못해 방어 준비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탄니의 왕과 귀족들은 동굴로 도망쳤고, 그 사이에 투트모세 3세는 병사들로 하여금 미탄니의 도시들을 마음껏 약탈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이후에 미탄니 왕은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 알레포 주변에서 이집트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전투가 끝나고 나서 투트모세 3세는 오늘날 튀르키예에 있던 히타이트 왕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았습니다. 이는 전투의 결과가 투트모세 3세의 우세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렇게 활발한 대외 정복 전쟁을 벌이는 것 이외에도 투트모세 3세는 50개가 넘는 사원들을 건설한 위대한 건축가였으니, 그야말로 고대 이집트를 번영하게 만든 위대한 군주라고 불릴 만합니다.
[출처 : 오유-유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