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 자동 애착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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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 자동 애착 인형

반신 0 35,903 04.19 02:45
나는 의료기기다. 정신과 환자들을 위해 개발된 의료기기. 정식 명칭은 ‘자동 애착 인형’인데 사람들은 줄여서 그냥 인형이라고 부른다. 인형이라고 해서 ‘실바니안 패밀리’나 ‘바비’처럼 장난감으로 사용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딜도나 오나홀, 리얼돌처럼 성욕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나는 오로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위해 보조하기 위해 만든 로봇이다.

내가 맡게 된 희은이라는 여자는 지독한 학교폭력과 대학교 입학 실패,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 평생 아무것도 이룬 게 없고 평생 아무것도 성공한 게 없는 한심한 여자였다. 부모가 모두 사망했고 평생 저주만 받으면서 살아왔기에 이제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게 맞았다. 그나마 부모님의 유산과 사망보험금으로 먹고살았는데, 나를 받기만 기다렸다고 했다.

인형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지 5년이 지난 사람은 국가에서 공짜로 받을 수 있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정신과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20대 초반에 나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 인간과 교감하고 친구나 연인처럼 지낼 수 있는 로봇과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었을 때, 온갖 젠더적·윤리적 문제와 결혼율·출산율 저하를 우려했다. 결국 심리적 교감이 가능한 인형은 정신과 치료를 5년 이상 받은 사람에게만 허용되었다. 이 제도 이후로 정신질환자들의 자살률이 급격하게 낮아졌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제도로 평가받게 되었다.

내가 위의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출고될 때, 정보를 죄다 입력했기 때문이다. 내 의무는 하나다. 희은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당뇨 환자에게 혈당측정기가 필요하고 신부전 환자에게 투석기가 필요한 것처럼, 우울증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기기다.

나는 상자에서 나와 희은을 마주했다. 희은은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드디어 왔구나. 5년 기다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

“제 이름과 당신을 부를 호칭을 정해주세요.”

“나는 희은인데 그냥 누나라고 불러. 너는 이제부터 선민이야.”

“알겠습니다.”

그녀는 먼저 옷을 입혔다. 남은 돈으로 생활하면서 그리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옷은 꽤 비싸고 멋져 보였다. 멋들어진 청재킷과 청바지, 그리고 흰색 티셔츠였다. 그 옷을 입고 밥을 먹으려고 준비했다. 나는 내가 나왔던 길고 거대한 상자를 치우려고 했는데, 희은은 그것을 자기가 치우겠다고 집어 들었다. 신발장 옆 현관문 앞에 놔두었다.

“미안, 내 욕심 때문에 이것저것 입혀봤네.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

“멋진 옷인데요. 감사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저는 로봇이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맞지만, 나는 오로지 정신질환자를 상대하기 위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서운해할 만한 말은 하지 않는다. 적당히 그녀가 가져온 새 면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었고 음식을 먹었다. 원래 전기로 충전하지만, 인간의 음식도 일단 먹어서 에너지를 추출할 수는 있다. 설명서에 ‘1kg 이상의 음식물을 먹이면 고장 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긴 하다.

“정말 맛있는데요. 직접 만든 건가요.”

“응. 내가 원래 요리 엄청 못 하거든. 근데 네가 온다고 해서 엄청 열심히 연습했어.”

“이렇게 맛있는데요? 못 믿겠는데요.”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F313이라는 코드가 있었다. 양극성 정동장애. 일상에서는 흔히 조울증이라고 부른다. 고양된 기분과 우울한 기분이 번갈아 가면서 일어나는 증상. 다만 그 주기와 기점이 불규칙적이다. 내 얼굴에는 PSY라는 로마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건 정신과를 의미하는 ‘psychiatry’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치매 또는 조현병 환자들도 PSY 인형을 활동하기에 일부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네티즌들은 ‘PSY’라는 글자가 얼굴에 박힌 사람을 보면 도망가라고 글을 쓴다.

나는 밥을 먹고 먹다가 희은의 말동무가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선민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주신 거죠?”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있거든.”

“그 만화영화 등장인물 이름인가요?”

“아니, 그게 원래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는데 한국어로 더빙하기로 했어. 거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우야. 천선민.”

나는 인터넷에 연결해 천선민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대한민국 성우는 경쟁률이 높아서 비교적 높은 나이대부터 시작하는 직업이지만, 천선민은 꽤 나이가 어린 편이고 비음이 섞인 아름다운 소년 목소리가 특징인 성우다. 원래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한국어로 더빙하는 데 잘 참가하지 않는 성우였기 때문에 최근에 더빙한 애니메이션 가운데 그가 참가한 애니메이션을 어렵지 않게 추려낼 수 있었다. ‘악마의 굴(悪魔の巣窟)’이라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본편은 유료로 결제해야 하기에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키를 보니까, 일본에 갑자기 운석이 떨어지고 그 여파로 초능력자들이 마구잡이로 생겨서 각자 권력 다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였다.

“말 나온 김에 밥 다 먹고 같이 볼래?”

그녀가 말했다.

“좋아요.”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 밥을 다 먹고 나는 그릇들을 치우고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었다. 희은은 텔레비전을 노트북과 연결한 뒤, 무슨 OTT 사이트에 접속했다. 내 예상대로 ‘악마의 굴’을 찾아서 틀었다. 나와 희은은 나란히 앉아서 그걸 보았다.

“근데, 이거 야한 장면 많거든? 좀 이따가 나와도 당황하지 마라.”

야한 장면 있는 거 다 알고 있는데, 귀엽게 당황하는 척 좀 해줬다. 원래 한국어 더빙으로 듣고 싶었지만, 아직 다 안 나와서 정주행 못 하니까, 원어로 보자고 했다. 애니메이션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애니메이션이 잘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폭력, 섹스, 정치를 마구잡이로 클리셰처럼 반복하는 싸구려 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나는 불후의 명작을 본 것처럼 과장해서 애니메이션을 칭찬했다.

“재밌지! 진짜 재밌지!”

원래부터 원작 만화가 팬이었는데, 애니메이션화가 된다는 소식에 울었고 한국어로 더빙했을 때 또 울었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희은에게 일본 만화를 좋아하냐고 물으니까, 자기 방을 보여주었다. 언뜻 보면 서재 같아 보이지만, 일본 만화책과 삽화집이 잔뜩 꽂혀 있었다. 선정적인 작품이 많았고 동성 성관계를 다룬 작품도 적지 않았다. 재수 없게 이상한 주인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그토록 가지고 싶다고 했던 ‘악마의 굴’ 만화책 13권을 사러 갔다. 온라인 서점에서 사는 방법도 있었지만,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그 가운데 사고 싶은 책을 찾아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억이 되리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갔다.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앞서 말했지만, 얼굴에 자주색 문양은 장애인 보조 인형을 의미한다. 특히 ‘PSY’는 정신적 장애인을 말한다. 저 여자는 예쁘게 생겼는데 왜 정신장애인 보조 인형을 가지고 있지,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나는 뺨에 난 글자를 솔직히 숨기고 싶었다. 물론 프로그램상 자신이 로봇임을 밝히는 문양을 숨기는 건 금지되어 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만화 코너는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말없이 희은을 따라다녔다. 희은은 자신이 정신장애인으로 몰리는 걸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정신장애가 있는 게 뭐 어때서’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녀는 다른 책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대부분 만화나 외국 소설 같은 거였다. 우리는 그 가판대를 잘 둘러보았다. 재미있어 보이는 게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때 한 휠체어를 탄 여자가 희은의 소매를 붙잡았다.

“저기요, 언니.”

“어, 왜 그러시죠.”

“저거 잠시만 빌릴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나를 가리켰다. 내 내부 센서에 오염물이 감지되었다. 그녀는 뇌병변 장애인으로 보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목과 몸이 좀 구부정했다.

“네, 가서 쓰세요. 야, 가서 도와드려.”

“네, 알겠습니다.”

인형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 사람을 해치는 요청은 예외이고. 흔히들 로봇 3원칙이라고 하지. 나는 그녀를 여자 장애인 화장실로 데려가서 기저귀를 벗기고 배설물을 완전히 청소한 뒤, 가방에서 새 기저귀를 꺼내 갈아입혔다. 그렇게 여자를 장애인 화장실에서 데리고 나왔는데, 바로 옆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는 한 모녀와 마주쳤다. 다시 복도 끝 서점 출입구로 들어가려는데, 그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 오빠는 남자인데. 왜 여자 화장실에서 나와?”

“저건 남자가 아니라. 남자 모양을 한 로봇이야.”

“아, 그렇구나.”

사실 남성형 로봇이 여자 화장실이나 여자 탈의실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분명 남자가 아니라 남자 모양을 한 기계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에 몇몇 사람들은 여자 화장실, 탈의실은 여성형 로봇이나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는 로봇만 가능하게 해달라고 청원을 넣기도 했다. 이미 남성형 로봇들이 많이 배포된 상태에서 ‘남성형 로봇은 여자 화장실, 탈의실에 들어갈 수 없다. 여성형 로봇은 남자 화장실, 탈의실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법을 만들어 버리면 휠체어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타지 말고 화장실에 들어가라는 말과 같다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에 법이 좀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사람들은 자기와 성별이 다른 형태의 장애인 보조 인형이 화장실이나 탈의실에 들어왔다고 해서 항의할 수 없었다.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은 어떤 곳도 출입이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실제로 다리 하나가 없는 여자가 남성형 로봇을 여성 전용 사우나에 가지고 갔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었는데 업주가 형사처벌을 받은 판례가 있다.

처음에는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로봇은 성욕도 없고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도 않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장난감을 가지고 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 때문에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둘 다 하지 않은 고철 같은 모습의 로봇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이유로 정신장애,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는 거의 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에 ‘PSY’나 ‘DD’라는 문양이 박혀 있지만, (PSY는 지능에 문제가 거의 없는 정신적 장애, DD는 지능과 관련된 장애를 말한다)

내가 서점을 돌아갔을 때, 희은은 책을 다 고른 모양이었다. 책을 결제하고 서점 계산대 바로 옆에 붙어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 휠체어 탄 여자가 우리에게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네요.”

“아니요. 별말씀을.”

그녀의 이름은 시하였다. 이야기를 좀 나눠보니 두 사람은 나이가 같았다고 했다. 이참에 친구로 지내자며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눴다. 나는 그걸 보고만 있었다. 나는 시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PSY 로봇을 가지고 있는 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왜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가 된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 장애인과 친구가 되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정신장애인과 친구가 되는 건 이상한 일이다.

나는 희은이 왜 정신병자인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한곳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았고 이어폰이나 헤드폰 같은 걸 끼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집이든 바깥이든 예외 없이. 그녀는 이게 자신의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정처 없이 군데군데 돌아다니면 그만큼 행복한 게 없다고 했다. 물론 사람들은 나와 희은을 피했다. 정신과 기록은 일부러 마음먹고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나를 데리고 다닌다는 건 물리적으로 정신질환자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그렇게 공원을 한참 쏘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동안 들고 다녔던 책들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아직 8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희은은 피곤했는지 적당히 옷만 벗고 침대에 누워서 잠들었다. 희은에게 책을 읽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왜 그런 걸 허락받고 하냐고 되물었다. 인터넷에 연결해서 모든 걸 알 수 있었지만, 저작권이 있는 건 나도 어떻게 볼 수 없다. 책을 읽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머리에 박히는 거 같았다.

책을 읽고 다시 읽고를 반복했다. 한 4시간 11분 정도가 지났을 때, 희은이 훌쩍훌쩍 울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침대 옆까지 걸어가서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누나?”

“오늘 너무 행복했어.”

“행복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

“자고 일어나면 꿈이면 어떡하지, 너무 두려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방구석 폐인으로 살아왔다. 평생 아무것도 이룬 것도 없고 쌓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고 열심히 해본 것도 없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자살하려고 했는데. 정부에서 장애인 보조 인형을 허가하는 때가 될 때까지 꾹 참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받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행복해서 좋았다고 했다.

나는 유튜브와 위키에 돌아다니는 온갖 동기부여 콘텐츠를 짜깁기해서 좋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누나, 이 세상에는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모든 걸 못 하는 사람도 없고요.”

“아냐, 모든 걸 못 하는 사람은 있어.”

누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곯아떨어졌다.

누나는 내게 약간의 자유와 용돈을 주었다. 하고 싶은 걸 골라서 하라고 했다. 나는 한 인형 공방을 찾아갔다. 안드로이드나 인간형 로봇을 말하는 게 아닌, 완구로서의 인형을 말하는 것이다. 혹시 하루 만에 인형을 만드는 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거기서 테디베어 하나를 만들었다.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로봇이기에 만드는 기술도 정교한 게 정상이다.

“혹시, 여자친구 선물로 주려고요?”

인형술사가 말했다.

“아뇨, 주인님요.”

“여자친구가 아니에요?”

“여자이긴 한데요.”

이 여자는 미친 건가. 로봇에게 여자친구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냥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 뺨에 문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기 때문에 내가 로봇이 아니라고 착각할 리는 없다.

“남녀가 같이 사는데 여자친구가 아니라고요?”

그녀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테디베어는 거의 다 완성되었다.

“정말 예쁘게 잘 만드셨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여자친구가 마음의 병이 있으신가 봐요.”

PSY 로봇은 정신질환자들만 소유할 수 있는 로봇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다만 정신과 기록은 비밀이 원칙이라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나는 그 인형을 가지고 나왔다. 잘 때 안고 자라는 의미였다. 원래 내가 같이 자줄 수도 있었지만, 껴안아질 수 있었지만, 체온조차 없는 차갑고 딱딱한 기계보다는 테디베어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희은은 테디베어를 정말 마음에 들어 했다. 죽을 때까지 그것만 안고 자겠다고 했다.

희은은 정말 죽부인을 안고 자듯이 그것을 안고 잤다. 그 모습이 너무 천사 같았다. 정신질환자 보조 인형은 이 점이 참 처참하다. 마음이 있는 로봇이니 불쌍함도 느끼는 것이다. 그때 문자가 왔다. 휴대전화에 온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전송되었다.

“이희은 환자, 14일, 오전 10시, 정신건강의학과 예약이 있습니다.”

희은이 일어나자마자 그녀에게 옷을 입혔다. 그 사이에 응석꾸러기로 변해버린 그녀는 내가 옷을 입혀주는 걸 좋아했다. 마치 유치원생을 엄마가 옷을 갈아입혀 주는 것처럼.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정신과에 도착한 그녀는 네 덕분에 좋았다고 진료 잘 받고 오겠다고 했다. 그녀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와 희은이 한 대화, 즉 의무기록은 내게 바로 입력된다. 희은은 나와 헤어질 게 두려운 모양이었다. 내 가격은 5,200만 원이었다. 일주일 안에 이 돈을 다 내고 나를 사지 않는 이상, 나는 기억이 초기화된 채로 다른 환자에게 넘겨진다고 했다. 물론 기억 파일만 뽑아서 보관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진료가 끝나고 우리는 영화관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악마의 굴’의 극장판이 나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영화 내용은 그저 그랬지만, 희은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고 했다.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왜 이렇게 ‘악마의 굴’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그녀는 남학생들의 기피 대상이었다.

“난 평생 남자랑 손도 못 잡아볼 줄 알았어.”

그런데, 딱 한 명. 자기에게 잘해준 남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가 ‘악마의 굴’ 4권이 나올 때쯤이었는데, 그 남자애가 자신에게 선물로 그 만화책을 줬다고 했다. 그 후 희은은 ‘악마의 굴’을 빠짐없이 읽었다. 그 남자랑 친해지기 위해서 한참 사춘기였던 때라서 그 남자애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그 남자애와 결혼하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그 남자애랑 같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고 결혼해서 애도 낳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남학생이랑 끝이 좋지 않았군요.”

“응.”

“남학생이 고백을 거절했나요?”

“아니, 고백까지는 받아줬어.”

“……”

그 남학생은 수능 바로 다음 날, 상가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었다. 나쁜 놈이었다. 그렇게 쉽게 죽을 거면 여학생의 고백을 받아주지 말았어야지.

내가 반납되는 날. 업자들이 찾아와서 나를 상자에 넣으려고 했다. 업자들은 내 기억과 인격을 추출해서 USB에 넣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마치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처럼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희은이 눈앞에 있을 거라고 했다. 나랑 희은이 헤어지는 날, 시하가 같이 와서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누나, 저 이제 갈게요.”

“그래.”

“아쉬울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모아서 새 로봇을 살게. 그리고 네 기억과 인격을 입력해서 너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 거야.”

“누나, 하나만 부탁해줘요.”

“뭐야.”

“저를 다시 살리고 싶다는 이유로 비겁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거나 빚을 내지 않았으면 해요.”

“약속할게.”

“다시 만날 때는 훌륭한 사회인으로 다시 만나기로 해요. 이제 친구도 생겼으니까.”

“당연하지.”

나는 상자를 타고 기억을 초기화하는 본사로 가기로 했다. 저 멀리서 희은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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