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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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대한 단상

산곡4동주민 0 13,821 2023.03.23 09:19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은 <불평등의 역사>(The Great Leveler, 2017)에서 석기시대부터 21세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훑어본 뒤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인류 역사상 불평등은 단 한 번도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된 적이 없고 언제나 전염병, 전쟁, 혁명 등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소되어 왔다고.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자 노동력이 부족해졌다. 황폐해진 농토가 많아졌고 농민의 품삯이 올라갔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던 중세 봉건제도의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귀족들의 몰락을 재촉했고 전쟁 후 조금은 더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차르 체제가 붕괴되고 귀족들의 토지가 몰수되자 (적어도 한동안은) 경제적 불평등이 대폭 완화되었다.

 

그밖에 여러 나라에서 식민지 해방 직후 진행된 토지개혁 역시 불평등을 상당히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60년대까지도 한국보다 잘살던 필리핀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추락한 근본 이유가 토지개혁의 실패에 있었던 반면, 한국은 해방 후 부족하나마 토지개혁에 어느 정도 성공했기에 부의 재분배 효과가 있었다.

 

이는 이후 논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교육시키려 했던 한국인의 교육열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교육열은 물론 자식이 부모보다 더 잘 살게 해주려는 욕망의 발현이었지만, 그 교육열의 합은 한국을 최빈국에서 선진국의 문턱까지 받쳐준 국가적 자산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 한국은 그런 성장의 동력이 거의 소진된 듯하다.

 

계층상승의 거의 유일한 통로였던 교육이 너무 비싸졌고, 무리해서라도 내로라 하는 대학을 나온다 해도 기대에 걸맞는 직장은 소수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이유는 선진국을 모방하여 발전해온 한국의 산업구조가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이 많으려면 세계적인 기업이 더 많아져야 하고, 그 기업와 연관된 탄탄한 중간 규모 기업들이 많아야 하는데,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아직도 저가 노동에 의존하는 제조업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 한계 상황의 징후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가장 단적인 징후는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현상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지는데 결혼과 출산의 동기가 커질 리가 없다.

 

불평등의 심화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과 중국의 세계 시장 편입으로 지난 30년간 세계는 유례없는 자유무역의 전성기를 누렸다. 동구권과 중국을 비롯한 제3세계의 저렴한 노동력이 만든 제품으로 인플레 우려 없이 세계는 마음껏 소비하고 즐겼다.

 

중간 중간 닥친 금융위기는 세계를 연결하게 된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에 뭔가 결함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으나 위기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잊어버렸고, 월가의 탐욕은 다시 커지고는 했다.

 

현대의 금융 위기는 닥칠  때마다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는 복잡한 금융상품이 현대의 금융 구조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코로나19는 그런 불평등을 한 번 더 가속화했고, 이제 미국은 부의 99%를 1%가 소유하는 사회가 되었다.

 

혹자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불평등은 좋은 것이라고. 그래야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불평등이 있어야 부의 낙수효과도 있는 거라고. 그리고 사회 전체의 파이가 커져야 그중 작은 조각을 가져가는 사람도 더 많이 가져간다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면 게을러지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북유럽의 복지 모델이 실패했다는 말이 나온 지도 꽤 되었다. 그리고 부의 절대 수준을 비교하면 현재의 일반 노동자가 19세기의 양반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산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뇌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과 주변 사람을 비교한다. 그렇게 진화했다.

 

게다가 정보통신과 SNS의 발달로 이제 동네 사람과 비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빌 게이츠나 이재용과 비교하게 되었다.

 

부의 낙수효과는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 지 오래다. 부의 낙수효과는 부자가 자기 부를 상당 부분 소비해야 가능한 것인데, 부의 격차가 너무 커지면 소수의 부자는 자기가 가진 부를 다 소비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의 소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잉여의 부가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가 가격을 올리고, 부의 불평등은 더 심화되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이런 악순환은 이미 구조화되었다.

 

근래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 유럽에서 집값이 비교적 싼 나라에 투자자본이 몰려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기사를 얼마 전 보았다. 실제 이주하여 살기 위해 구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인데다가 별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도심지의 아파트와 주택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임대하는 투자회사들이다. 그 결과 원래 살던 주민들은 올라간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밀려나고 있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그들의 반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또 하나의 조짐이다.

 

코로나19는 세계화의 종말을 갑작스레 앞당겼고 각 나라가 각자도생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최강대국이었던 미국마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한국과 대만의 손목을 비틀어 자기 나라에 공장을 짓고 사람을 채용하며 반도체 노하우까지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이건 국가건 여유로울 때는 너그러워진다. 사해동포 정신이 충만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시기에는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만 돌보게 되고, 그 테두리 밖의 사람은 경계하거나 배척하게 된다. 자기 코가 석 자인데 누구를 돌볼 것인가.

 

그럴 때 대국적인 견지에서 국민을 아우르며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 고통을 분담할 각오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 .

 

불평등이 더 심해지면 사회 곳곳에서 각종 파열음이 날 것이다. 잔혹한 범죄가 늘어나고, 가진 사람은 담장을 더 높이 쌓을 것이다. 그러다가 파국이 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격렬한 파국이거나 조용한 파국이거나.

 

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고 한다.

 

첫 번째,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역사의 흐름에 깔려 죽었다. 

 

두 번째, 내리막길에 굴러내려가는 바위를 막아보려고 용감히 나선 사람들은 더 빨리 죽었다.

 

세 번째, 바위를 막을 힘은 없으니 옆에 비껴나 있다가, 바위가 바닥에 떨어진 후 다시 굴려 올릴 때 힘을 보태겠다고 한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수도원과 도서관을 만들던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바윗덩이가 아직은 내리막길에 굴러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조만간 하락에 가속도가 붙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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