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몽환

유머

단편소설 몽환

심해열수구 0 37,841 2023.05.21 22:35

 

 

 어둠이 짙게 깔린 어느 깊은 산 속.  


달빛에 의지한 채 홀로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바람이 잔잔하여 고요한 중에


불현듯 그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

 

얼른 뒤를 돌아본 그는 이내 소스라치게 놀랐다. 


깜깜한 수풀 속에서 발광하는 두 개의 붉은 점이 


자신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위협을 느낀 그가 벗어날려고 했으나 몸이 말을 안 들었다. 


두려움에 심장이 요동치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기 때문이다.  


늪에 빠져 가라앉는 형국이었다.


그렇게 그는 깊은 공포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면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 대던 그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악마의 모습과 마주하였다. 


별안간 기이한 광경이 일어났다. 


시간의 흐름이 점차 느려지며 흔들리던 초목의 잎들이 잦아들더니 


그림 속에 고정된 풍경으로 변했고, 


잎사귀를 기어가던 무당벌레 또한 영원으로 직행하는 

 

시간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하고 


어떠한 미동도 생기도 없는 그림 속에 껍데기로 전락해 버렸다.


이 산에 분포하는 갖가지 동식물의 호흡과 하늘에 뜬 달의 맥박도 멎어버린 채.


이윽고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움직이지 않는 시간의 침묵에 휩싸인 이곳에 정적을 깨며 울려 퍼졌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늪에 갇힌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점차 울림은 커져만 갔다.


드디어 그의 앞에 멈춘 검은 형상이 신비한 힘으로 그를 늪에서 끌어내었다.


구원자였다. 

 

 

 한바탕 꿈을 꾼 듯 정신을 차린 그. 

 

깜깜한 산 속에서 무슨 변을 당할 지 몰라 얼른 그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보름달이 산을 비추었고, 음산한 공기가 그의 머리칼을 곤두서게 했다.


혹 악마가 자기 뒤를 쫓아오진 않을까 불안했다.


갑자기 날아든 벌레로 인해 놀란 그는 낯빛이 핼쑥해졌다. 


충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은 사라졌다. 


올빼미 울음소리로 산 속의 밤은 깊어가고 이제 자정을 넘긴 시각. 


심신이 지친 그는 적당한 곳에서 쉬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몸을 숨길 만한 굴을 찾아보았다.


물 흐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마침 목이 말랐던 그는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갔다.


어느 절벽 아래를 내다보니 골짜기를 따라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진 그는 곧 무대를 감상하는 관객이 되었다.


골짜기 위에서 콸콸 쏟아지는 폭포수가 장엄한 바다를 만들었고,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의 연어가 된 바닷물이 

 

골짜기 밑을 흐르는 한줄기 강과 같은 냇물을 만났다. 


졸졸대는 경쾌한 소리가 산골짜기라는 무대를 환하게 비추는 달빛과 

 

오묘하게 어우러져 심금을 울리는 가락이 연주되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그림같은 무대가 펼쳐지자 물밀듯이 찾아온 감동으로 말미암아 


관객의 두 눈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을 내며 입가로 흘러내렸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동을 일으켜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아름다운 무대의 향연이 곧 이어지는 장면에선 돌연 예상치 못한 전개로 돌입하며


가슴 아픈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경쾌하게 연주되는 물의 흐름 위로 모습을 드러낸 달이 일렁거리며 춤을 췄고 


수면 위로 드러난 자갈과 바위들이 빠르게 흘러가는 

 

물의 가락과 거세게 부딪치며 왜곡을 일으켰다. 


이윽고 경쾌한 가락과 어우러져 한바탕 춤사위를 벌이던 

 

밝은 아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직 일그러진 창백한 표정의 음울한 노파만이 

 

왜곡된 가락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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